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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9)
봄은 언제 시작하는가 입춘대길(立春大吉).봄이 나타나니 크게 길하리라. 문에 붙은 글씨가 씩씩하고 정갈하다. 삿된 기운은 그치고, 더러운 먼지는 돌아서라. 강병인 선생의 글씨다. 글자는 뜻을 전하는 수단이지만, 글씨는 인간을 세우는 예술이다. 선생은 기계 글자로 가득한 차디찬 세상을 인간의 글씨가 넘치는 따뜻한 세계로 바꾸는 일을 지금껏 해 왔다. 작은 인연을 기억해 해마다 기운찬 글씨를 보내는 선생으로부터 항상 나의 봄은 시작한다. 나아가 방을 단단히 붙이고, 돌아와 시를 읽으며 봄을 맞이한다.퇴계 이황의 봄은 언제 시작되는가. 근심 가득한 한밤중, 홀로 잠 깨어 서성이는데, 바람이 매화 향기를 뜰에 채울 때다. 기적을 만난 입술이 감탄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이룩한다. 홀로 창에 기대니 밤기운 차가운데(獨倚山窓夜色寒)매화가..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4] 교언영색주공(巧言令色足恭) _훌륭한 말솜씨와 잘 꾸민 얼굴빛과 지나친 공손함을 부끄럽게 여기다 5-25 공자가 말했다. “말솜씨가 좋고, 얼굴빛을 잘 꾸미며, 공손함이 지나친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운 일로 여겼는데, 나 역시 부끄럽게 생각한다. 원망을 감추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운 일로 여겼는데, 나 역시 부끄럽게 여긴다.” 子曰, 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배병삼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새긴다. 말솜씨가 좋고 얼굴빛을 잘 꾸미며 지나치게 공손한 자세를 수치로 여긴 것은 “자신의 이중성을 부끄러워함이니 겉과 속이 다름을 뉘우침”이요, 마음에 원망을 숨기고 그 사람과 벗하는 처세를 수치로 여긴 것은 “남을 대하는 태도의 이중성을 부끄러워함”이다. 전자는 자기 행동에 대한 성찰, 곧 충(忠)이고, 후자는 타자에 대한 자기 성실성의 성찰..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3] 숙위미생고직(孰謂微生高直) _누가 미생고를 곧다고 하는가? 5-24 공자가 말했다. “누가 미생고가 곧다고 하느냐?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얻으려 하니, 이웃집에서 얻어다 그에게 주었다.”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 미생고는 곧은 사람으로 이름나 있었다. 미생고는 애인과 약속을 지키려고 장마철에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끝내 불어나는 물에 빠져 죽은 미생(尾生)의 설화와 관련 있는 사람이다. 즉, 목숨을 버려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말을 지키려 했으니 미생고는 곧은 사람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공자가 생각하는 곧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식초를 얻으러 왔을 때 자기 집에 식초가 없자 미생고가 이웃집에 가서 식초를 대신 얻어다 건네준 일이 있었다. 공자는 이 일을 예로 들면서 미생고가 솔직한 사람이 아니라고 품평한다. 아름다운 이름..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1] 오당지소자(吾黨之小子), 광간(狂簡) _우리 고을 젊은이들은 뜻은 크지만 5-22 공자가 진나라에 있을 때 말했다. “돌아가야겠구나! 돌아가야겠구나! 내 고향 젊은이들은 뜻은 크디크고 문장은 빛나지만 이를 마름질할 줄 모르는구나.” 子在陳, 曰, 歸與! 歸與! 吾黨之小子, 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거대한 물길을 앞두고 이렇게 말한 후, 공자가 고향 노나라로 돌아가 젊은이들을 가르치려는 결심을 한다. 그로부터 ‘스승과 제자의 탄생’이라는 공자의 진짜 혁명이 시작된다. 공자는 세상에서 정치를 통해 직접 뜻을 펴려 했으나 오랫동안 부질없이 천하를 떠돌았을 뿐이다. ‘상갓집 개’라는 비웃음을 들을 정도로 적절한 시대를 만나지 못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공자는 떠돌아다닌 지 열네 해 만에 진나라에서 마침내 더 이상 정치로는 뜻을 펴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때마침 노나라에서도 ..
[시골 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9] 공야장(公冶長) _공자의 사위 이야기 5-1 공자가 공야장을 두고 이야기했다. “사위 삼을 만하다. 비록 옥에 갇힌 몸이지만, 그의 죄는 아니다.” 그러고는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子謂公冶長, 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공자는 제자들을 평하면서 가장 먼저 사위인 공야장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고는 그가 범죄 혐의로 옥에 갇힌 사람임을 환기한다. 고대에는 연좌의 위험이 있었기에, 죄인과 인척을 맺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공야장의 어떤 점을 좋게 보았기에 공자가 딸을 시집보낼 만하다고 말했는지는 문장에서는 알 수 없다. 공야장이 실제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구체적으로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자가 이런 사람에게도 딸을 시집보낸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공자는 사람 보는 눈이 아주 비범했던 것이다. 공자는 세간의 눈이 아니..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8] 삼사이후행(三思而後行) _ 세 번 생각하고 행하다 5-20 계문자는 세 차례 생각한 후 행했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이야기했다. “두 번이면 된다.” 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斯可矣. “사람이 항상 생각하지 않는 탓에 죄를 짓는다.” 하고 다산은 말했다. 어떤 일을 행하기에 앞서서 사태의 이치를 깊이 따져 물어 나아갈 길을 똑바로 하는 일은 당연하다. 문제는 생각을 지루하게 끌다가 행할 때를 놓칠 수도 있고, 생각만 하다가 해도 전혀 행하지 못할 때도 있으니, 생각하되 얼마만큼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두 번만 생각해도 충분하다는 공자의 말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한다. 옳은 일을 행할 때에는 일단 실천부터 하고 볼 일이지 생각에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막상 일을 당하면 실행하지도 않을 것이면서 깊이 생각하는 척만 한다고 비난하..
[논어의 명문장] 약성여인즉오기감(若聖與仁則吾豈敢, 성이나 인이라면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성(聖)이나 인(仁)이라면,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다만 그것(성이나 인)을 배우는 데 싫증내지 않고, [성이나 인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공서화가 말했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본받을 수 없는 점입니다.”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 『논어』 「술이(述而)」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술이」 편의 두 번째 구절인 “배우면서 싫증내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면서 게으르지 않은 것”과 똑같은 문장이다. 공자는 이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이 구절에서는 그 배움과 가르침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곧 ‘성(聖)’과 ‘인(仁)’이다. 공자가 ..
[논어의 명문장] 삼인행(三人行, 세 사람이 길을 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 [그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서 그것을 따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가려내어 그것을 바로잡는다.” 子曰:“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이 말은 『논어』 「술이(術而)」 편에 나온다. 널리 알려진 말로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여러 번역본을 보아도 해석이 거의 다르지 않다. 쟁점이 있다면, 아마도 왜 세 사람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리쩌허우는 두 사람이어도 내가 따르고 바로잡을 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셋이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고본에는 “三人行”이 아니라 “我三人行”이라고 되어 있으며, 리링에 따르면 오대(五代) 무렵에 아(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