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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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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좌표를 잡으려면 트렌드 책이 아니라 문학을 출판현장에선 요즈음 트렌드 책들을 기획하고 집필하고 편집하느라 한창 분주하다. 한 달 남짓 지나면, 올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내다보는 책들이 쏟아질 것이다. 한 해 유행을 어떤 기묘한 언어로 정리할지 무척 궁금하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로 인한 변화의 속도는 가파른데, 인간이 이에 적응하는 속도는 완만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기에는 누구나 얼이 빠지고 정신이 나간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는데, 주말이 다가올 무렵이 되면 ‘내가 뭐 했지’ 하는 기분에 시달린다. 이를 ‘공허감’이라 하는데, 현대의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리를 알려고 한다. ‘내가 있는 이 순간은 어느 때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선생님 나쓰메 소세키 ― 데라다 도라히코의 『도토리』를 읽고 선생님 나쓰메 소세키―데라다 도라히코의 『도토리』를 읽고 오랜만에 말 그대로 수필집을 후루루 읽었다. 데라다 도리히코의 『도토리』(강정원 옮김, 민음사, 2017)이다. 진주에 문학 강연을 다녀온 후, 피곤해서인지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서, 문득, 화장실에 놓아두었던 것을 들어서 훑어 읽다가 잠들었는데, 새벽에 읽어나 마저 읽었다. 솔직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느낌,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자유롭게 문장들이 사물로, 사건으로 옮겨 다니는 그야말로 수필(隨筆)의 전형이라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물리학자로 일본 근대수필의 한 봉우리. 자연과 인생의 접점을 응시하는 시선이 웅숭깊다. 가령, 초신성 폭발을 본 후에 쓴 「신성」의 한 구절은 물리학자다운 매력이 넘쳐났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말은 단지 영원한..
출판을 생각하다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다 “당신은 뱃속까지 진지합니까?”새벽에 상반기 출판 상황에 대한 글을 쓰다가 문득 나쓰메 소세키의 말이 떠올랐다.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에서 마주친 구절이다. 수첩에 슬쩍 적어두었는데, 메모해 둔 자료를 뒤적이다가 중간에 툭 튀어나온 것이다. 얼어붙은 듯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사는 것은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의 형태로 내 삶에 출몰하는 세상사를 ‘뼛속까지 내려가서’ 마주하는 것은 어렵다. 햄릿의 대사처럼 세계의 사개가 물러나 있고 이를 바로잡을 운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그 막중한 임무를 외면하고 싶지 않은 이는 누구이겠는가. 지난주 기획회의에 “편집 전략이란 무엇인가요?”라는 글을 보낸 후, 후배 한 사람이 답장을 보내왔다. “편집자의 역할은 과연..
나쓰메 소세키의 『태풍』(박현석 옮김, 현인, 2012)를 읽다. 1며칠 동안 틈을 내어 나쓰메 소세키의 『태풍(野分)』(박현석 옮김, 현인, 2012)를 읽었다. 여름 무렵부터 국내에 출간된 소세키 작품을 하나씩 챙겨 읽기 시작했는데, 『도련님』(양윤옥 옮김, 좋은생각, 2007)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진영화 옮김, 책만드는집, 2011)에 이어서 세 번째이다. 소세키 소설들은 어느 작품이든 깊은 사유의 힘과 반짝이는 위트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태풍』은 나쓰메 소세키가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하여 전업 작가로서 살아가기 직전인 1907년에 쓴 작품으로, 이전 작품인 『도련님』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비하면 다소 직설적이고 관념적으로 작가의 문학에 대한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생동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진영화 옮김, 책만드는집, 2011)을 읽다 한 나라의 문학이 그 형성 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특히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과 같이 서양에서 발달해 온 여러 양식들을 자국의 문학 전통 속에 수용해 새롭게 만들어 가야 했던 나라들은 더욱더 그렇다. 중국에 루쉰이 없고 일본에 나쓰메 소세키가 없고 한국에 이광수가 없었다면, 현재의 동아시아 문학은 아마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루쉰이나 이광수의 문학과는 달리 나쓰메 소세키한테는 통쾌한 유머가 있다. 루쉰의 웃음은 가혹할 만큼 쓰디쓰고 이광수는 전혀 웃을 줄 모르는데, 소세키 혼자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속해 있던 국가가 서구 열강에 대한 수비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공격(침략)을 택했던 것과 연관이 있을까?지난 열흘 정도에 걸쳐서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양윤옥 옮김, 좋은생각, 2007)을 읽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은 꽤 오래전에, 그러니까 아마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무렵에 읽고 지금까지 큰 관심을 두고 찾아 읽지는 않았다. 신구문화사나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등에 섞여 있던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우미인초」 같은 작품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 때. 이광수의 소설을 공부하면서 소세키가 자주 언급되곤 했는데, 그때는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일본 작품에 대한 폄훼가 살짝 학교 분위기여서 다시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중에 회사에 들어와서 시마다 마사히코의 『피안 선생의 사랑』(현송희 옮김, 민음사, 1995)을 만들 때, 그 후에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박유하 옮김, 민음사, 2005)을 편집할 때, 꼭 한 번 다시 읽어 ..
망오십(望五十), 매우(梅雨)에는 닥치고 독서 1두 주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는 시내에 전시회를 보러 외출하려다가 왠지 ‘읽는 일’을 하고 싶어져서 하루 종일 소파와 침대와 책상을 오가면서 책을 읽었다.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파워 클래식』(어수웅)에 실린 짤막한 서평 몇 꼭지를 챙겨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일본사 및 세계사 이해에 새로운 시각을 던진 화제작 『중국화하는 일본』(요나하 준)을 읽고, 그다음에는 『도련님』(나쓰메 소세키), 『그리운 친구여 - 카프카의 편지 100선』(카프카), 『검찰관』(고골), 『휘페리온』(횔덜린) 등의 고전, 『육체쇼와 전집』(황병승), 『단지 조금 이상한』(강성은) 등의 시집, 『배를 엮다』(미우라 시온),『엄마도 아시다시피』(천운영) 등의 소설, 그리고 2010년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열 권짜리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