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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삶의 좌표를 잡으려면 트렌드 책이 아니라 문학을

출판현장에선 요즈음 트렌드 책들을 기획하고 집필하고 편집하느라 한창 분주하다. 한 달 남짓 지나면, 올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내다보는 책들이 쏟아질 것이다. 한 해 유행을 어떤 기묘한 언어로 정리할지 무척 궁금하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로 인한 변화의 속도는 가파른데, 인간이 이에 적응하는 속도는 완만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기에는 누구나 얼이 빠지고 정신이 나간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는데, 주말이 다가올 무렵이 되면 ‘내가 뭐 했지’ 하는 기분에 시달린다. 이를 ‘공허감’이라 하는데, 현대의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리를 알려고 한다. ‘내가 있는 이 순간은 어느 때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트렌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깊은 욕망을 이룬다. 

과거를 돌이키고 현재를 확인하며 앞날을 내다보면서 삶의 좌표를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트렌드 탓에 길을 잃어버린다. 강물은 표면에서 부서지는 햇빛이나 어쩌다 지나는 유람선 때문에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 공허를 이기려면, 트렌드가 아니라 강물을 움직이는 힘에 올라타야 한다. 

사랑, 우정, 믿음, 정의, 공정…….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트렌드가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배워야 간신히 알 수 있는 가치들이다. 이러한 가치에 집중할 때 비로소 인생은 방향을 잡고 삶은 공허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는 힘, 즉 ‘생각’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 없으면 의미도 없다. 의미가 없으면 공허하고, 공허하면 중독에 빠지거나 우울에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가치에 집중함으로써 정신의 풍요로운 질을 유지할 도구가 있다.

문학이다. 좋은 문학작품은 덧없는 삶에서 의미를 생성하는 법을 우리한테 알려준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므로 파멸은 인간의 운명이다. 사자 꿈으로 상징되는 기쁨과 행복의 가능성이 고갈된 순간에도 산티아고 노인은 자기 존엄을 향한 분투를 멈추지 않는다.

며칠간 외로운 사투 끝에 노인에게 남은 것은 커다란 뼈다귀뿐. 하지만 노인은 그로써 소년의 인정을 얻고 비로소 사자 꿈과 함께 잠든다.

죽음에 지는 패배가 있고 지지 않는 패배가 있다. 삶의 거친 바다에 맞서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오직 제 힘으로 고기를 낚아 올린 인간만이 죽음에 지지 않고 불멸을 대가로 얻는다. 



나쓰메 소세키, 『마음』

선생은 인간 자체에 절망한 상태다. 숙부한테 배신당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삼각관계 탓에 친구를 배신해 자살에 이르게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잃어버렸다. 

사람이 ‘인간의 마음’을 잃고 짐승처럼 살 수밖에 없는 상태, 이것이 나쓰메 소세키가 파악한 현대다. 

그렇다면 ‘마음 없는 시대’에서 ‘마음 있는 시대’로 이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은 자신을 따르는 청년에게 묻는다.

“당신은 뼛속까지 진지합니까?”

진지한 사람만이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대답이다. 

 

장은수의 책장

https://select.ridibooks.com/book/1242000798 (이방인)
https://select.ridibooks.com/book/1242000299 (돈키호테)
https://select.ridibooks.com/book/862000754 (책 읽어 주는 남자)
https://select.ridibooks.com/book/749000042 (파이 이야기)
https://select.ridibooks.com/book/852000104 (불안의 서)
https://select.ridibooks.com/book/510000242 (영원한 이방인)
https://select.ridibooks.com/book/1242000336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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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셀렉트에서 책장을 공개해 달라고 해서

그중에서 제 책장에 있는 문학 작품을 몇 권 추천했습니다.

여기에 옮겨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