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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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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증오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우리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제작하고, 기계처럼 행동하는 인간을 생산한다. 옛날에는 노예가 될지 모를 위험이 있었다면, 지금은 로봇이나 자동인형이 될 위험이 있다.” ​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김영사, 장혜경 옮김, 2022)에서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이 말에는 현대인을 움켜쥔 삶의 아이러니가 섬뜩하게 표현돼 있다. ​ 오늘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생동감 넘치게 살지 못하고, 무력하게 일상의 쳇바퀴를 굴리고 있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다. ​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일상생활의 급진적 자동화, 자기 생각의 독립적 표현보다 남의 생각에 대한 공감과 공유를 조장하는 소셜미디어, 하루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문자와 메일 등 스마트 업무 환경 등은 생각의 로봇화를 촉..
인간은 ‘상대방의 거짓말’을 가려내는 데 무능하다 “낯선 사람이 우리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데, 왜 우리는 그걸 알아채지 못할까?”『타인의 해석』에서 베스트셀러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 묻는다. 관련한 연구를 집약하고 풍부한 사례를 집적해 인간 마음의 심오한 비밀을 캐내는 날카로운 통찰력,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탁월한 글 솜씨는 여전하다.인류사 대부분 동안 인간은 서로 잘 아는 이웃과 함께 살았다. 상대가 누구이며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모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진화했기에 우리 마음은 몸짓이나 어조 같은 사소한 신호만으로도 친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에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에 반해 낯선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기에 우리 마음은 이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아주 서투르다. 현대..
신도시에는 거리의 생활이 없다 어릴 때 살던 서울 약수동 달동네는 골목 천국이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집들이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좁고 넓은 길들을 거미줄처럼 뽑아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지나지 못할 골목에서 양보의 미덕을 익혔고, 동네 아이들 비밀 장소인 세 평 공터에서 놀면서 우정을 쌓았으며, 과일, 채소, 생선, 철물, 등유, 곡물, 잡화, 약국 등 구석구석 가게들을 구경도 하고 심부름도 다니면서 셈을 배웠다.약수동 떠나 서른 해 가까이 살아온 동네가 서울 노원이다. 갈대 무성한 드넓은 벌판을 바둑판처럼 정리해 비슷한 건물들을 줄지은 신도시다. 등산할 수 있는 산과 산책할 수 있는 강이 있고, 집 근처 한두 블록 안에 꼭 공원이 있다. 백화점과 쇼핑센터, 종합병원과 대학, 미술관과 과학관, 학원가와 상점가 등도 마련되어 있다...
책 읽는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 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국민독서실태조사의 발표를 계기로, 독서습관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글을 조금 보충해서 올려둡니다. 책 읽는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59.9%로 나타났다.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10명 중 4명이라는 뜻이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도 2007년 12.1권에서 2017년 8.3권으로 3.8권이나 감소했다. 책을 읽는 사람도 한 해에 서너 달은 책 없이 보내는 셈이다. 모바일 기기의 등장 등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면서 독서 이탈의 흐름이 빨라졌다.출산율 저하와 마찬가지로 독서율 저하에 따른 사회적 파장은 지금 당장이 ..
미식이란 무엇인가 한 달에 한 차례, 《대전일보》에 쓰는 칼럼입니다. ‘미식의 시대’입니다. 먹방이 인기를 끌고, 이른바 맛집이 넘쳐나죠. 하지만 맛이란 무엇일까요. 명절을 맞이해서 집집마다 음식이 푸짐하겠죠. 맛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식이란 무엇인가 미식의 시대다. 맛집 탐방은 이 시대의 성지 순례요, 먹방은 이 시대의 복음이요, 음식 평론가는 이 시대의 사도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알쓸신잡)이라는 이름의 하찮은 정보 목록에도 음식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무엇이 맛있는 것인가? 맛의 뿌리는 향토에 있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로부터 얻은 재료에 갖은 정성을 다하면 충분하다. 흔히 ‘고향의 맛’이라 불린다. 뮈리엘 바르베르의 장편소설 『맛』(홍서연 옮김, 민음사, 2011)에 따르면, ..
자기를 성찰하면서 사회를 다시 쓰기 - 2016년 한국 출판시장의 흐름 《시사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2016년 출판시장을 몇 가지 흐름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자기를 성찰하면서 사회를 다시 쓰기2016년 한국 출판시장의 흐름 “18년 동안 사익을 한 번도 추구하지 않았다”는 인간-기계가 통치하는 세상은, 틀림없이 무참하고 무의미하며 불행한 지옥일 것이다. 욕망은 타자로부터, 타자를 통해서 비로소 도래한다. 욕망이란 항상 타자에 대한 욕망이기에,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 온전히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자기 욕망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고 믿는 자는 자기 삶에서 타자를 뿌리째 뽑아 버린 괴물이다. 그런 존재는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자’인 신이거나, 누군가 프로그래밍해 주는 대로 살아가는 꼭두각시 기계일 수밖에 없다. 타자가 보이지 않기에 눈앞에서 어두운 물속으로 가라..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지금 출판계의 화두는 ‘문명史’(한국일보) 유발 하라리 방한에 맞추어 한국일보에서 거대사, 인류사, 문명사의 역작들을 망라했습니다.이 분야의 공부를 원하는 분들께좋은 참고자료가 될 듯합니다. 서점이나 도서관 같은 데에서 기획전시해도 좋겠네요. 기사에 사피엔스의 인기 비결에 대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단연 압도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판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특히나 눈 여겨 볼만한, 하나의 모델 같은 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옮겨둡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지금 출판계의 화두는 ‘문명史’프린트글자확대글자축소 중력파ㆍ인공지능 잇단 조명에‘사피엔스’ 계기로 관심 높아져베스트셀러 ‘총 균 쇠’는 물론‘더 타임스 세계사’ 등 인기“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단연 압도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판 위기..
[TV 책을 보다] 휴가지에서 읽을 책 Best 10에 출연하다(사전 질문지 공개) KBS 텔레비전 ‘TV, 책을 보다’ 여름휴가 특집 1, 2에 출연했습니다. 후배인 강유정, 허희 두 평론가와 개그맨 고영환, 시사평론가 정영진 두 분과 함께 두 주 동안 엄청 즐겁게 녹화했습니다. ‘프로들은 역시 다르네!’ 하는 기분이 들었죠. 김솔희 아나운서가 이끄는 대로 이리 몰리고 저리 옮기다 보니 어느새 한 번에 다섯 권씩 책 열 권을 2시간 만에 모두 이야기해 버렸습니다. 흥미롭고 재미났습니다. 조금은 얼이 빠져서 나중에 방송을 보니 저런 말도 해 버렸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역시 글의 인간인지라, 사전 질문지와는 달리 녹화 중에는 아직도 분위기 타고 엉뚱하게 끌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에 목록 열 권과 함께 제가 사전 질문지에 답했던 기록을 남겨둡니다. 수전 손택, 『사진에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