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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출판과 대낮의 출판 (경향신문) 대안연구공동체의 ‘인문학, 삶을 말하다’ 시리즈 및 현실문화연구의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에 대해서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가 기사를 썼습니다. 제 의견이 담긴 부분이 있어서 아래에 전제합니다. ‘대낮의 출판’에 대해서는 따로 의견을 밝힌 바 있으므로, 부연하지는 않겠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책이 황혼의 형식을 넘어 대낮의 형식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늘날 독자는 사태가 정리된 이후의 사유가 아니라, 더 빠른 정보와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처럼 이론적인 책과 『영구평화론』처럼 현실 문제에 천착하는 책을 모두 썼다”며 “현대의 책도 사유의 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두꺼운 책, 짧은 시기 현장의 상황에 대한 사유를 담은 책으로 이원화될 것”이..
[논어의 명문장] 필야사무송호(必也使無訟乎, 반드시 소송이 없도록 하겠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송사를 듣고 처리하는 것은 나도 남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할 것이다.”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청송(聽訟)’은 소송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일입니다. ‘유(猶)’는 ‘마찬가지’ 또는 ‘다를 바 없다’는 말입니다. ‘인(人)’은 보통 ‘사람’으로 풀지만, 여기에서처럼 ‘남’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필야(必也)’는 ‘어찌해서든 반드시’라고 풀이하는데, 야(也)는 특별한 뜻 없이 음절을 맞추려고 넣은 어조사입니다. ‘사(使)’는 ‘~하게 하다’입니다. 뒤에 목적어 ‘백성들’이 생략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호(乎)’는 단정적인 뜻을 표시하는, 또는 의지를 표시하는 종..
가라타니 고진의 『자연과 인간』(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2013)을 읽다 1내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미국의 콜롬비아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의 영문판이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서문이 붙은 이 책을 읽고 나는 적잖은 흥분을 느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내 문학적 스승 중 한 분인 김윤식 교수의 연구를 지탱하는 이론적 기둥 하나를 보았다는 점이고(일본으로만 한정하면 고바야시 히데오에서 에토 준으로, 에토 준에서 가라타니 고진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김윤식의 『내가 읽고 만난 일본』(그린비, 2012)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다른 하나는 그의 논의가 날로 지지부진해져 가고 있는 한국문학 연구의 한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오로지 이 감각에만 의존해 나는 1970년대 이후 오랫동안 끊어졌던 일본 지성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