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자

(49)
[논어의 명문장] 욕거구이(欲居九夷, 구이 땅에서 살고 싶다) 선생님께서 구이(九夷) 땅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 [그러자] 누군가 말했다. “누추한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거기에 산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공야장」 편에 나오는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돈다면[道不行, 乘桴浮于海]”이라는 구절과 같이 읽어야 한다. 사실 공자는 혼란한 세상을 떠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천하를 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포부가 수용되지 못하는 현실에 때때로 좌절하곤 했다. 그래서 탄식하듯이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선해서 읽어야 할 것은 ‘구이(九夷)’의 장소적 실체가 ..
[논어의 명문장] 욕속부달(欲速不達, 서두르면 이룰 수 없다) 자하가 거보 땅의 우두머리가 되어 정치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서두르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려 하지 마라. 서두르면 달성할 수 없고, 작은 이익을 보려 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子夏爲莒父宰, 問政. 子曰:“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욕속부달(欲速不達)은 서두르면 일을 망치기 쉽다는 뜻이다. 송나라 정이(程頤)는 자하(子夏)가 작고 가까운 것에 마음을 너무 쓰는 버릇이 있었으므로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주석했다. 자하는 자식이 죽은 슬픔에 애통해하다가 눈이 멀었다고까지 전한다. 슬픔이 지나쳐서 자신을 해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이 바로 작은 일에 온 마음을 쓰는 자하의 본래 심성일 것이다. 공자는 자하의 이러한 점을 잘 알았기에 크고 멀리 보라고..
[논어의 명문장] 승부부해(乘桴浮海,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간다면, 나를 따를 사람은 아마 유(由, 자로)이리라.”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가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낫지만, [뗏목 만들] 나무를 취할 곳이 없구나.”子曰:“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공자는 천하를 편력했으나 등용되지 못하여 뜻을 펼칠 수 없었다. 희망에 지친 공자는 작은 뗏목이나 타고 바다를 떠돌며 세상 밖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이때에도 따를 사람은 자로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로에 대한 굳은 믿음과 함께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좌절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행동의 인간’이었던 자로는 공..
[논어의 명문장] 부지육미(不知肉味, 고기 맛을 잊었다) 선생님께서 제나라에 있었을 때, 소(韶)를 듣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음악을 하는 것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을 줄은 생각지 못했구나.”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 부지육미(不知肉味), 즉 “고기 맛을 알지 못했다”는 구절은 「술이(述而)」 편에 나온다. 『논어』에는 가끔 대단히 감각적 표현이 나오는데, 나는 이 구절을 첫손에 꼽고 싶다. 공자 당시에 고기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고기란 가장 강렬한 세속적 쾌락을 상징한다. 이에 비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색(色)”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예술은, 즉 문명과 문화는 덧없이 사라질 육체의 말초적 즐거움을 넘어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서른다섯 살, 조..
[논어의 명문장] 후생가외(後生可畏, 젊은이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뒤에 오는 사람이 지금 사람만 같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마흔 살 쉰 살이 되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子曰:“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矣.”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성어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공자가 자신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안회(顔回)를 염두에 두고 했다는 설이 있다. 옛것을 숭상했던 공자로서는 예외적이다. 제자들을 격려하면서 한 말로, 젊은이로서 앞날이 많고 힘이 넘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학문의 도를 얻기 위해 거듭 노력해 마흔이 될 무렵에는 그 이름이 저절로 알려지기를 바라라는 뜻이다. 리링에 따르면, 공자는 “그..
[논어의 명문장] 삼인행(三人行, 세 사람이 길을 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 [그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서 그것을 따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가려내어 그것을 바로잡는다.” 子曰:“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이 말은 『논어』 「술이(術而)」 편에 나온다. 널리 알려진 말로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여러 번역본을 보아도 해석이 거의 다르지 않다. 쟁점이 있다면, 아마도 왜 세 사람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리쩌허우는 두 사람이어도 내가 따르고 바로잡을 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셋이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고본에는 “三人行”이 아니라 “我三人行”이라고 되어 있으며, 리링에 따르면 오대(五代) 무렵에 아(我..
공자의 인생 자술(自述) [세계일보 칼럼] 공자의 인생 자술(自述)은 아주 짧다. 고작 서른여덟 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공자는 아주 장수했다. 가장 아끼던 제자인 안회(顔回)와, 과정(過庭)의 가르침을 베푼 아들 공리(孔鯉)가 먼저 죽어버리는 참척의 슬픔을 견뎌야 할 정도였다. 햇수로는 70년이 넘고, 날수로 따지면 2만 6000여 일에 이른다.전란이 끝없이 이어진 춘추 시대, 비교적 낮은 신분인 사(士)로 태어났으나 세상을 구제하려는 큰 뜻을 품고 천하를 편력한 삶이었다. 정말로 파란만장했다. 애제자로부터 “선비가 굶주리는 일도 있답니까?”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고, 세상에 초연한 채 숨어 사는 은자로부터 “상갓집 개”라고 비웃음당하기도 했다. 사연을 모조리 글로 옮기면 수십 수레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공자는 인생의 자잘한 굴곡을 전..
‘조선 최고 지식인’ 추대는 정쟁(政爭)의 산물 두 주에 한 번씩 《문화일보》에서 신간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다. 빠르게 책을 읽고 이를 서평이라는 형태로 남기는 것은 여러 번 밝혔지만, 내게는 또 다른 즐거운 모험이다. 편집자 일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책을 읽어 왔고, 또 기꺼이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책을 골라서 읽어 왔기에 읽기 자체는 그다지 모험이 아니다. 거기에 쓰기가 덧붙은 것은 아직 익숙지만은 않지만, 또 평생 늘 해 왔던 일이기도 하다. 지난 주에 읽은 책은 연세대 최연식 교수의 『조선의 지식계보학』(옥당, 2015)이다. 니체가 생성하고 푸코가 생각의 도구로 발전시킨 학문인 ‘계보학’을 이용해서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하서 김인후 등이 조선 최고의 지식인으로 손꼽히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말로 물어뜯고 위협하고 피로 얼룩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