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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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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마와 공부 저는 곡에 대한 공부를 좋아합니다. 모던타임스 레퍼토리를 짤 때는 독일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탐독했어요. 덕분에 연주 작품의 배경이 더욱 생생하게 떠올랐죠. 곡을 공부한다, 피아노를 공부한다는 말이 어색한가요? 피아노는 기술 연마와는 또 다른, 공부라는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스트레칭을 하는 건 연마죠. 저는 밥 먹을 때도 젓가락을 두들겨 가며 리듬감을, 화장품을 바르고 두드릴 때도 리듬감을 생각해요. 이것도 연마에요. 곡을 연습할 때 작곡가의 생애를 찾아보는 건 공부죠. 그 곡을 지금까지 연주한 사람들의 디스코그라피(discography·레코드목록)를 조사하는 것도요. 평소 헤겔, 릴케의 저서와 시를 읽어요. 역사책도 탐독하고요. 클래식 연주란 죽어 있는 텍스트를 되살리는 작..
[매경칼럼] 스스로 공부하는 인간 “지적 욕구에 불타던 터라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세미나 수업을 많이 신청했습니다. 그리스어로 플라톤을 읽고, 라틴어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고, 프랑스어로 베르그송을 읽고, 독일어로 비트겐슈타인을 읽었습니다. …… 모두 소수학생만 듣는 수업이어서 결석은 불가능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했던 셈입니다.”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 나오는 동경대 수업 이야기다. 요즈음 대학을 생각하면 정말 꿈같아 보인다. 이 회고는 학부 수업만으로 다치바나 같은 지적 거인을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등교육의 목표는 ‘공부한 인간’이 아니라 ‘공부하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다. 대학은 수업료를 내고 강의를 들은 후, 졸업 단추를 누르면 직장이라는 상품이 쏟아지는 자판기가 아니다...
[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7> 공무원들 7년째 독서모임 "시민 목소리에 더 공감하게 됐어요"(김해 행복한 책읽기) '책읽는 도시' 선포 계기로 첫 모임인사고과 혜택 없어도 자발적 참여직급 다양하지만 독서토론 땐 평등"살아갈 힘도 얻고 업무에도 도움" “이 책 표지를 볼 때마다 상당히 불편했어요. 지난달 말에 사무실에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한 남성 직원이 의자를 밀치는 등 저한테 폭력을 행사했는데도, 조직이 워낙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저에 대한 배려 없이 그까짓 일은 아무 일 아니라는 식으로 지나치려고 했습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저 개인적으로, 또 우리 조직에 대해 모멸감을 엄청나게 느꼈습니다.”소리가 조금씩 잦아들더니 결국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오늘의 ‘행복한 책’은 김찬호의 『모멸감』(문학과지성사)이다. 감정은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특히 한국사회는 모멸을 서로 ..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고조기(高兆基)의 산장우야(山莊雨夜, 산장에 밤비는 내리고) 산장에 밤비는 내리고 고조기(高兆基, ?~1157) 어젯밤 송당(松堂)에 비 내렸는지시냇물소리 한 자락 베갯머리 서쪽으로 흘렀네.새벽에 뜰 앞의 나무를 쳐다보니잠든 새가 아직 둥지를 떠나지 않았구나. 山莊雨夜 昨夜松堂雨,溪聲一枕西.平明看庭樹,宿鳥未離棲. 맑고 깨끗한 시입니다. 한 폭 산수화를 보는 듯합니다. 글자를 늘어놓았을 뿐인데, 눈으로는 새벽 풍경이 선연히 보이고 귀로는 물소리도 들려오니 저절로 감탄이 돋습니다. 시골의 새벽은 새소리로 가득합니다. 소쩍새, 부엉이 같은 밤새들 울음이 잦아들 때쯤이면, 닭이 울어 젖히고 낮새들이 서둘러 일어나 벌레 잡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제주 출신의 고려시대 시인 고조기가 맞은 이 새벽은 유난히 고요합니다. 풀벌레조차 울음을 잊은 듯 적막합니다. 그때, 시인은..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심부재언(心不在焉,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이른바 몸을 닦는 것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은, 몸에 분하고 성냄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요, 무섭고 두려워함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요, 좋아하고 즐김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요, 근심하고 걱정함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를 일컬어 몸을 닦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놓여 있다고 한 것이다. 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전(傳) 7장은 8조목 중에서 ‘정심(正心)’을 풀이..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정약용)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배운다는 것은 곧 깨닫는 것을 말한다. 그럼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이 잘못인지를 깨우치는 것이다. 잘못을 깨우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른 말로 깨우칠 수 있을 뿐이다. (중략) 이미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부끄러워 뉘우치고, 다시 그 잘못을 고쳤을 때 비로소 배운다고 할 수 있다. ― 다산 정약용, 『아언각비』 서문 중에서 올해 열일곱 번째 책은 한정주 외의 『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포럼, 2007)다. 일찍이 공자가 사물(四勿)의 하나로 다룰 만큼,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는 선비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의 하나였다. 이 책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쓴 문집에서 ‘말하기’와 관련한 여러 문장들을 모은 책이다. 곁에 두고 조금씩 읽..
나만의 인생을 만들고 싶을 때(사이토 다카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만의 인생을 만들고 싶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앞서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다. 특히 ‘고전’이라고 인정받는 책들은 큰 도움이 된다. 고전은 오랜 시간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책, 인류에게 원대한 비전을 주었거나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해 준 책이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살아남은 만큼 거기에는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담겨 있다. ― 사이토 다카시 올해 열여섯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오근영 옮김, 걷는나무, 2014)이다. 예전에 같은 저자가 쓴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홍성민 옮김, 뜨인돌, 2009)를 재미있게 읽은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골랐다. 일본의 신서가 흔히 ..
공부하는 삶에 대하여(김우창) 공부하는 삶을 살다 보면, 시간이 가장 귀중하다는 것을 저절로 몸에 익히게 됩니다. 지도학생들을 처음 만나면, “삼십 분 다방에서 잡담하고 지나면 오늘 내가 손해 봤다고 좀 느껴야 공부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요. 삼십 분 낭비했다면, 공부하는 사람 자세로는 좀 틀린 거라고. 그에 대한 후회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지요. ―김우창 올해 열네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김우창, 문광훈의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이다. 정신의 까마득한 높이를 갖춘 스승과 자기 세계를 이미 넉넉히 갖춘 제자가 나누는 질문과 대답이 아름답다. 800쪽 가까운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아마 벌써 두 번째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덮은 지 며칠이 되었지만, 끝없이 여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