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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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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근대를 넘어서 윤리의 근대로 냉전이 끝나고 근대가 전면적으로 개화하며 전 세계가 미국과 프랑스를 본받아 자유를 원리로 하는 국가, 사회, 제도를 만들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 역설적으로 근대가 힘을 잃고 소모되어 스스로를 감히 ‘보편적’이라고 내세울 수 없음이 분명해졌습니다. 1970년대 말에 일어난 이란혁명은 이 상황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 징후였습니다. 중동 지역에 자유를 기본 원리로 삼은 국가가 아니라 ‘이슬람 부흥주의’의 기치를 내건 국가가 등장하면서 중동은 격동의 시대로 빠져들었습니다. (강상중) ======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개인을 내세우고 정치-경제-종교의 분리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경제(돈)가 모든 사회 조직을 지배하는 근대라는 게 마르크스의 뛰어난 통찰이다.레닌이 발명한 소비에트는 국가와 사회를 하나로 묶는 총력..
피터 드러커의 배신자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8)의 북 콘서트가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렸다. 이 책은 ‘학력에서 경력으로’ 일자리 규칙이 옮겨가는 시대를 맞이하여 개인이 일터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보람 있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조지프 슘페터, 피터 드러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떠한 형태의 전체주의에도 반대한, 자유주의 경제의 철저한 옹호자들이 답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유에 대한 이토록 강한 갈망을 품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여기에 칼 포퍼나 조지 소로스를 추가하면 좀 더 완전한 목록이 될 것이다.콘서트 사회를 보면서 필자가, ‘인문의 힘’을 길러 주는 고전으로 피터 드러커의 경영서를 추천한 까닭을 물었더..
회사보다 소중한 나를 지켜라 - 도교대 교수 강상중이 말하는 불확실성 시대의 일과 행복 회사보다 소중한 나를 지켜라도교대 교수 강상중이 말하는 불확실성 시대의 일과 행복 진주박물관에 고전 강의를 하러 기차로 오르내리면서 강상중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7)을 완독했다. 본문에 나오는 분류에 따르면, 이 책은 “전철의 이동시간 등을 이용하여 목차, 표제어, 키워드를 체크하는 정도로 건너뛰며” “세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국내에 번역된 저자의 모든 책을 읽은 한 사람의 팬으로서, 이 책은 적어도 나한테는 “고전처럼 시간을 들여서 읽지는 않지만 의견이나 감상을 써야 하므로 일정 정도의 집중력으로 끝까지 다 읽는” “일과 관련이 있거나 혹은 그 주변 영역에 관한” 책에도 속한다.번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제목에 적혀 있는 ‘일’은 인간이 행하는 ..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①] <지대넓얕> 채사장은 어떻게 스타 저자가 되었나? 이홍 대표와 같이 꾸미는 프레시안 좌담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블로그에 옮겨 놓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입니다. 철지난 트렌드 분석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담론이 될 수 있도록 애써 보려고 합니다. 채사장은 어떻게 스타 저자가 되었나?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①]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
[TV 책을 보다] 휴가지에서 읽을 책 Best 10에 출연하다(사전 질문지 공개) KBS 텔레비전 ‘TV, 책을 보다’ 여름휴가 특집 1, 2에 출연했습니다. 후배인 강유정, 허희 두 평론가와 개그맨 고영환, 시사평론가 정영진 두 분과 함께 두 주 동안 엄청 즐겁게 녹화했습니다. ‘프로들은 역시 다르네!’ 하는 기분이 들었죠. 김솔희 아나운서가 이끄는 대로 이리 몰리고 저리 옮기다 보니 어느새 한 번에 다섯 권씩 책 열 권을 2시간 만에 모두 이야기해 버렸습니다. 흥미롭고 재미났습니다. 조금은 얼이 빠져서 나중에 방송을 보니 저런 말도 해 버렸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역시 글의 인간인지라, 사전 질문지와는 달리 녹화 중에는 아직도 분위기 타고 엉뚱하게 끌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에 목록 열 권과 함께 제가 사전 질문지에 답했던 기록을 남겨둡니다. 수전 손택, 『사진에 관..
출판을 생각하다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다 “당신은 뱃속까지 진지합니까?”새벽에 상반기 출판 상황에 대한 글을 쓰다가 문득 나쓰메 소세키의 말이 떠올랐다.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에서 마주친 구절이다. 수첩에 슬쩍 적어두었는데, 메모해 둔 자료를 뒤적이다가 중간에 툭 튀어나온 것이다. 얼어붙은 듯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사는 것은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의 형태로 내 삶에 출몰하는 세상사를 ‘뼛속까지 내려가서’ 마주하는 것은 어렵다. 햄릿의 대사처럼 세계의 사개가 물러나 있고 이를 바로잡을 운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그 막중한 임무를 외면하고 싶지 않은 이는 누구이겠는가. 지난주 기획회의에 “편집 전략이란 무엇인가요?”라는 글을 보낸 후, 후배 한 사람이 답장을 보내왔다. “편집자의 역할은 과연..
출판과 편집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 연말에 며칠 쉬면서 책과 출판과 글과, 무엇보다도 삶에 대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보았다.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늘 두려운 일이다.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끈질기게 나를 물고 늘어졌다. 망오십을 앞둔 삶이 갑자기 부닥치게 되는 답답한 공포라고 해야 할까? 새해를 앞둔 그저그런 의례적 공포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 시간 속에서 하릴없이 끙끙거렸다. 그 와중에 틈틈이 내년에 나올 번역서의 교정을 보고, 또 밀렸던 책과 원고를 읽었다.편집자 생활 20주년 기념 스페인 여행 때 내가 내렸던 답은 '읽기'였다. 내 삶의 대부분이 '읽기'로부터 나왔으니 결국 그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사적 삶의 결심과 공적 인생의 사업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일까? 때마침 새해 회사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