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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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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대전일보》에 쓴 칼럼입니다. 올해 초 교토, 나라, 오사카 여행에서 느꼈던 바를 적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걷기’와 ‘뒤로 걷기’ 새해를 여행으로 시작했다. 교토, 나라, 오사카 등을 쏘다니면서 온갖 명승과 유적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스마트폰 어플로 확인하니 걸어 다닌 거리만 100킬로미터를 훌쩍 넘었다. 교토는 고스란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천년고도답게, 세월을 얹을수록 아취를 더하는 중이다. 부족한 듯 소박하기에 오히려 마음이 충만해지고, 꾸미지 않아 한적하기에 도리어 마음이 광대해진다. 청수사도, 여우신사도, 금각사도, 메이지신궁의 정원도 좋지만, 교토의 절정은 개인적으로 은각사다. 비바람의 힘만으로 장식한 목조건물들, 굵은 모래흙으로 쌓아올린 탑, 갈퀴로 훑은 듯 꾸민 정원…. 저..
이웃이란 옆집에 산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만들어진다 이웃이란 옆집에 산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만들어진다테리 이글턴의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 : 윤리학 연구』(김준환 옮김, 도서출판 길, 2018)을 읽다 이글턴의 새 책이 나왔다.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 : 윤리학 연구』, 김준환 옮김(도서출판 길, 2018). 오후부터 읽기 시작, 손에서 놓지 못하고, 저녁식사 때 잠깐 쉰 후, 지금껏 내리 읽었다. 라캉의 삼분법(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에 기대어, 인류의 윤리적 사유를 절개하고 접합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사상가들 중 흥미로운 몇 명이 아직 남았지만, 일단 한겨레 기사 눈팅~~~^^;;; 최원형 기자의 핵심 정리. 이글턴은 ‘자신의 욕망을 고수하라’는 라캉의 표어에 일부 수긍하면서도, “윤리는 욕망이 아닌 사랑에 대한 것”이..
편집자의 정년퇴직 지난달, 제주 독립책방 연합에 초대를 받아 강연 겸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밤마다 나누었는데, 올해 환갑을 맞은 편집자 선배 한 분이 드디어 정년퇴직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아, 아쉬우면서 또 감격스럽다.출판과 같은 영세하고 변동성이 높으면서도 높은 지적 수준이 필요한 산업에서 평생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른 분야 사람들은 잘 모른다. 심지어 출판계 내부에서도 좀처럼 짐작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 선배 역시 학술서와 교양서 분야에서 주목할 명성이 있었고, 나중에는 공기관의 출판 담당으로 일했기에 인생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본다.말이 나온 김에 ‘편집자의 직업 경제’를 들려주고 싶다. 25세에 연봉 2400만 원으로 편집자 일을 시작한다고 가정하자. 해마다 5% 정도 연..
이 청년을 보라 - 김동식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읽다 김동식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드디어 읽고, 작은 글을 하나 썼습니다. 《매일경제》에 실었던 칼럼은 조금 손보아 여기에 올려 둡니다. 이 청년을 보라 청년은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검정고시로 간신히 고등학교를 다녔을 뿐이다. 세상에 나와 주물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뜨거운 아연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했다. 온도를 높이면 어느새 단단한 쇠가 물렁대듯, 상상의 풀무를 밟아 답답하고 억울하고 암담한 현실을 녹이고, 간절한 바람을 덧붙여 가면서 환상적 현실을 빚어냈다.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난 것은 우발적이었다. 아무도 글쓰기를 가르치지 않았기에, ‘글 쓰는 법’을 검색해 스스로 배운 후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소설로 옮겼다. 그러고는 평소..
‘한 학기 한 권 읽기’와 출판 편집자의 할 일 《기획회의》 454호 특집 “‘한 학기 한 권 읽기’에 대비하라”에 기고한 글입니다. 올해 출판 시장에 가장 핫 이슈 중 하나가 학교에서 실시되는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의미를 짚어 보고, 편집자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아래에 공유합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와 출판 편집자의 할 일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0년 동안 책 전체를 읽으면서 수업하는 것으로, 2018년부터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수업에서 책을 접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어 등 많은 교과서에는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을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각 분야의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책에서 ..
복종하는 신체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 새해 벽두에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김현정 옮김, 더숲, 2018)를 읽었다. 이 책은 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로서 살지 못하고, 권위에 굴복해 자신을 상실하고, 나아가 타자를 공격하는 데까지 이르는가를 심리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고민했던 ‘악의 평범성’ 문제, 즉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나치의 하수인이 되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가 하는 문제를 잊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인간, 주체로서 행동하고 약자와 공감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수십 년 동안 여러 사람이 과제를 이어받으면서 끈질기게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정신의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우리 문화는 “근본적으로 복종을 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