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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조선 시대 양반부부, 낮엔 대화하지 않았다

《문화일보》에 두 주에 한 번 쓰는 서평입니다. 이번에는 채백의 『조선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컬처룩, 2018)을 다루었습니다. 조선후기와 개화기의 소설을 분석하여,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못한 일반 민중들의 소통 방법을 복원하려 한 흥미로운 학술서입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조선시대 양반 부부, 낮엔 대화하지 않았다

채백, 『조선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컬처룩, 2018)



역사에는 항상 힘이 작용한다.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이가 드물었던 시대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쉬웠다. 책을 불사르고 사람을 묻는 한이 있어도, 권력자들은 ‘용비어천의 노래’를 기어이 남기고 싶어 했다. 패자는 승자의 상대로나마 기록되었지만, 일반 민중들은 역사에 한 줄을 얻기 어려웠다. 로버트 냅의 말처럼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 또는 ‘역사 없는 사람들’이었다. 각종 유물들이나 단편적 기록을 통해 짐작할 뿐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갔는지 좀처럼 실감하기 어렵다.

『조선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부산대 채백 교수는 이러한 미지의 갈증을 풀어준다. 이 책은 조선시대 후기와 개화기에 출판된 17종의 소설들을 분석해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나누었는가를 탐구한다. 이 책이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조선 후기의 『소현성록』, 『배비장전』, 『홍길동전』, 『숙향전』, 『춘향전』, 『심청전』 등 여덟 종과 개화기의 『혈의 누』, 『빈상설』, 『추월색』, 『재봉춘』 등 아홉 편이다. 소설 작품의 특성상, 대화나 편지 등을 통해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직간접적 소통방법이 담길 수밖에 없으며, 이를 분석하면 민중들이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주변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게 되었는지”를, 즉 조선시대 사람들의 사적 또는 공적 소통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석씨가 참정이 처음으로 낮에 말하는 것을 듣고 시험하는가 싶어 더욱 부끄러워하며 감히 한마디도 못하고 진퇴양난 하여 머뭇거리는 태도가 진실로 더욱 애원하는 듯하고 예쁘기도 하여 심신을 녹게 하였다.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소현성록』의 이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소현성과 석씨는 서로 부부다. 참정은 소현성을 말한다. 경치를 즐기던 그가 우연히 부인을 만나 자리를 권하는데, 석씨는 낮에 남편이 말하는 걸 처음 들었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한다. 머쓱해진 소현성은 하는 수 없이 자리를 파하는 쪽을 택한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시대 양반부부는 ‘묵언의 윤리’를 좇아 살았다. 낮에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법이 없었으며, ‘공경하는 손님’처럼 서로 존중하면서 살았다. 가족들조차 부부가 대화하는 장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 부부 사이에는 서로 경어를 썼으나, 가부장제 질서를 반영한 듯 높임 정도가 서로 달랐다. 아내는 남편에게 존경법, 겸양법, 공손법 등 세 가지 경어법을 모두 써서 깍듯이 높였으나, 남편은 아내에게 하오체의 예사높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부인은 남편을 직책이나 ‘낭군’ ‘상공’으로 부르고, 남편은 아내를 ‘부인’으로 부르고, 제3자에게는 ‘석씨’ ‘이씨’ 등 성씨로 호칭했다. 일처다부의 상황에서 구분할 필요를 반영한 것이다.

‘묵언의 윤리’에 따라 부모자식 사이의 또는 형제자매 사이의 대화도 활발하지 않았다. 대화를 규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혈연의 상하관계’였다. 자식은 부모(장인장모)에게 깍듯한 경어를 썼으며, 부모는 자식에게 평어로 이야기했다. 『춘향전』에서 퇴기인 월매가 양반집 사위 이몽룡에게 말을 낮춘 걸 보면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형제간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이를 기준으로, 손위는 손아래에게 하대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경어를 썼다. 동료 사이엔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형님 또는 형이라 칭하면서 상호 존대를 다했다. 모르는 사이에는 신분 또는 나이에 따른 차이가 반영되지만, 첫 만남에서는 상호 존대하는 경우가 많았으되, 행색이나 옷차림 등이 영향을 미쳤다.

김관일은 딸의 혼인 언론을 하다가 구씨가 서양 풍속으로 직접 언론하자 하는 서슬에 옥련의 혼인 언약에 좌지우지할 권리가 없어 가만히 앉았더라.

『혈의 누』에 나오는 구절이다. 혼인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주인공 구완서와 옥련이 갑자기 영어로 언어를 바꾸어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을 약속한다. 옥련의 아버지 김관일은 두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볼 수밖에 없다. 결혼이 부모가 결정하는 가문 사이의 결합이 아니라, 개인 간 계약으로 변화하는 이후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경무청에다 정(呈, 고발)하여 청(靑)바지를 입혀야지.” 

『빈상설』에 나오는 말이다. 청바지는 푸른색 옷, 즉 죄수복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공적 소통에서 주로 입말을 쓰곤 했다. 『춘향전』에서는 마을 과부들이 관가로 몰려가 춘향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처럼 집단으로 몰려가 등장(等狀)하거나 자신 또는 가족이 원정(原情) 또는 발괄(白活)하여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1895년 3월 을미개혁을 통해 재판소가 나타나 행정과 사법이 분리되자, 소장을 제출해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정장(呈狀)이 새로운 해법으로 떠올랐다. 『빈상설』이 1908년에 발표된 것을 감안하면,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식이 10여 년 만에 재판 제도를 이용하는 쪽으로 빠르게 변모해 갔음을 암시한다.

『조선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은 개화 이후 서구의 영향을 받아 도입된 신문, 잡지, 우편, 전보 등 새로운 미디어들이 영향력을 늘려가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그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는 더 평등하고 더 자유로운 세상, 성별과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의사를 표현하고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시끄러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책은 어찌 보면 그 불가역성을 알려주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