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 안연과 계로가 공자를 모실 때 일이다. 공자가 말했다. “각자 너희들이 품은 뜻을 말해 보겠느냐?” 그러자 자로가 말했다. “수레와 말과 옷과 갖옷을 벗들과 나누어 쓰다가 닳아 없어져도 섭섭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연이 말했다. “잘하는 일을 떠벌이지 않고, 힘든 일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노인들은 편안히 모시고, 벗들은 믿음으로 대하며, 젊은이들은 품어 주고 싶다.” 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輕裘與朋友, 共敝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어떤 삶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가. 앞에 올 자기 삶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일이면서 또한 구체적으로 어떤 삶이 남을 것인가를 묻는 일이기도 한다. 이 장은 『논어』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 세 사람의 입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자로는 도탄에 빠진 세상에서도 올바름의 길을 버리려 하지 않았던 의리의 사나이였고, 공자가 가장 아꼈던 안회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배움을 즐겼던 아름다운 문사가 아닌가. 게다가 성인으로까지 추앙되는 그들의 스승 공자가 나란히 인생을 나누는 장면이다.
배병삼은 원(願)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알고, 이를 채우려는 마음의 발로를 드러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자로와 안회의 대답은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이런 삶을 목표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공자가 지(志)라는 말을 써서, 즉 지향성을 담은 뜻을 물은 이유도 같다.
자로의 대답은 의리, 즉 우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게 의리란 귀하고 아끼는 물건이라도 서로 나누어 쓰고, 마침내 그 물건이 헐어 없어져도 군소리하지 않는 것이다. 소박하면서도 친밀한 맛이 넘치는 바람이다. 안회의 대답은 세속의 때가 전혀 묻지 않았다. 물질적이지 않고 정신적이고, 오로지 품성을 닦는 데 집중한다. 자신의 뛰어남을 자랑하지 않고 애썼던 일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은, 삶의 지향이 바깥으로 드러날 업적을 남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수양하는 데 있음을 보여 준다. 공자의 대답은 일상을 주목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인정, 즉 인(仁)을 부조한다. 물질을 아낌없이 나누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더불어 잘살려는 것이다. 자신을 닦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더불어 잘살려는 것이다. 공자는 두 제자의 멋진 대답을 뛰어넘어 이 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노인은 편안히 모시고, 벗들과 미덥게 사귀며, 아이들은 따습게 품어주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이야말로, 그로써 이룩되는 ‘지금 이 순간’의 공동체야말로 사람이 진정으로 바라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이(程頤)는 세 가지 답을 두고, “공자는 안인(安仁), 안회는 불위인(不違仁), 자로는 구인(求仁)의 경지”라고 했다. 공자는 인을 편안히 여기는 경지에 이르렀고, 안회는 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지이고, 자로는 인을 얻으려고 애쓰는 경지라는 말이다. 부남철은 자로는 성공한 다음에 남한테 잘하는 수준, 안회는 자기와 남을 같다고 여기는 수준, 공자는 남한테 잘하면서 자신도 편해지는 수준으로 보았다.
홍성군청 안에 있는 안회당의 모습
안연계로시(顔淵季路侍). 자왈(子曰), 합각언이지(盍各言爾志)?
안연(顔淵)은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顔回)를 말한다. 연(淵)은 그의 자다. 계로(季路)는 자로(子路)를 높여서 하는 말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나이 쉰 살이 넘으면, 태어난 순서에 따라 이름 앞에 백(伯), 중(仲), 숙(叔), 계(季)를 붙여서 존칭으로 삼았다. 양보쥔에 따르면, 시(侍)는 공자는 앉아 있고, 안회와 자로는 서 있는 것을 말한다. 셋 다 앉아 있었다면 시좌(侍坐)라고 했을 것이다. 합(盍)은 하불(何不), 즉 ‘어찌 ~하지 않느냐?’ ‘~해 보는 게 어떠냐?’라는 뜻이다. 지(志)는 단지 마음에 품은 생각이 아니라 지향을 갖춘 생각, 즉 이상을 함축한다.
자로왈(子路曰), 원거마의경구여붕우(願車馬衣輕裘與朋友), 공폐지이무감(共敝之而無憾).
리쩌허우는 자로의 답은 약속을 중시하고 의리를 강조하며 비분강개하는 협객의 기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경구(輕裘)에서 경(輕)은 고본에는 없다. 의미를 분명히 하려고 쓸데없이 덧붙은 말이다. 구(裘)는 짐승의 털가죽으로 안감을 한 옷을 말한다. 정약용은 의(衣)를 조복이나 제복으로 보았다. 시라카와 시즈카에 따르면, 붕(朋)은 앞뒤에서 함께 걸머지는 조개 묶음을 형상화한 글자이고, 우(友)는 맹세의 글자인 왈(曰) 위에 두 사람이 손을 얹어 맹세를 행하는 것이다. 붕우란 단지 친한 사이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함께하겠다는 맹약을 한 사이다. 폐(敝)는 구멍 나고 망가지는 것이다.
안연왈(顔淵曰), 원무벌선(願無伐善), 무이로(無施勞).
무벌선(無伐善)은 ‘착한 일을 하지만 이를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흔히 풀이한다. 그러나 오구라 기조는 “어떤 일이 선이라고 독단적으로 단정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새롭지만 아주 엉뚱하진 않다. 선(善)을 서양식 선악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알맞음’ ‘괜찮음’ ‘적당함’ ‘뛰어남’ 등으로 이해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이럴 때 선은 상호성을 필연적으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리쩌허우는 안회의 대답이 겸허하고 근신하여 자아를 수양하는 사람의 말답다고 평했다.
이 구절에서 施는 과장한다는 뜻이므로 ‘이’라고 읽어야 한다. 로(勞)는 공로가 있다는 뜻이다. 『주역』에 나오는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는다”[勞而不伐]에서 나왔다. 그러나 공안국은 이 구절을 남에게 힘든 일을 미루지 않는다는 뜻으로 새겼다. 이 경우에도 施의 음은 ‘이’다. 하안은 施를 이(移, 옮기다)라고 풀이했는데, 음은 ‘이’다. 이를 따르면, ‘수고로운 일을 남한테 떠넘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회남자』에 나오는 “공이 천하를 덮어도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않는다.”(功蓋天下, 不施其美)라는 말이 안회의 대답과 통한다고 배병삼은 이야기했다. 한편, 주희의 『집주』에는 “노는 수고로운 일이다. 수고로운 일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므로 남에게도 베풀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라는 해석도 소개되어 있다. 이럴 경우에는 ‘시’로 읽어야 한다.
자로왈(子路曰), 원문자지지(願聞子之志). 자왈(子曰), 노자안지(老者安之), 붕우신지(朋友信之), 소자회지(少者懷之).
황간은 공자의 말을 “노인들은 나 덕분에 편안하고, 벗들은 나 덕분에 믿고, 젊은이들은 나 덕분에 그리워한다.”라고 풀이했다. 젊은이들이 공자를 그리워하는 까닭은 그가 자애로움을 한량없이 베풀었기 때문이다. 『논어집주』는 “노인들은 나를 편안히 여기고, 벗들은 나를 믿고, 젊은이는 나를 그리워한다.”라는 일설을 소개하는데, 이 역시 그럴 듯하다. 리링은 노인을 편안히 해 줌은 그들에게 보살핌을 베푸는 일이요, 친구를 믿게 함은 그들을 신임하는 일이요, 젊은이를 품음은 관심을 갖고 살핀다는 뜻으로 보았다. 이는 “자신을 닦아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修己安人)”과 통한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이 구절에서 “천지자연의 오묘함과 같은 기상”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번역 > 논어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7] 호학(好學) _ 배우기를 좋아하다 (1) | 2016.09.25 |
---|---|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6] 내자송(內自訟) _안으로 자신과 소송하다 (0) | 2016.09.24 |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4] 교언영색주공(巧言令色足恭) _훌륭한 말솜씨와 잘 꾸민 얼굴빛과 지나친 공손함을 부끄럽게 여기다 (2) | 2016.08.09 |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3] 숙위미생고직(孰謂微生高直) _누가 미생고를 곧다고 하는가? (3) | 2016.08.05 |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2] 불념구악(不念舊惡) _지나간 나쁜 일을 마음에 담지 않다 (0) | 2016.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