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 공자가 말했다. “끝이로구나! 자기 잘못을 알아서 안으로 자신과 소송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子曰,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
공자가 언제 이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말년일 것이다. 주희는 내자송(內自訟)을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마음에서 스스로 허물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즉 ‘잘못하면 고치기를 거리끼지 않는다’는 「학이」 편의 말과 맥락이 닿아 있다. 잘못을 순순히 시인하면서 입에 붙이는 것보다 내면의 법정에 세워서 양심을 따라 따져 묻는 일이 더 뉘우침이 간절할 것이다. 따라서 안으로 자신과 소송하는 자는 잘못을 반드시 고칠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가망이 높다. 주희의 학설이다.
리쩌허우는 내자송을 증자의 삼성(三省)과 이어서 해설한다. 자신을 돌이켜 반성하는 것은 신 앞에서 죄를 따지는 기독교적 인간의 참회와는 궤를 달리한다. 참회가 죄책에 따른 마음의 고통을 동반한다면, 자성(自省)은 본질적으로 성인에 이르는 첫걸음을 떼는 일로 즐거운 일이다. “자신을 돌아보아 정성스러우면 즐거움이 그보다 더 클 수 없다.”(『중용』)라고 했다. 스스로 잘못을 성찰하는 일은 사람을 신의 영원한 죄인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해방자로 바꾸는 일이다. 어쩌면 기독교와 유교는 여기에서 갈라설지도 모른다. 리쩌허우의 학설이다.
배병삼은 이 장이 수기(修己)의 세 가지 기본 구조를 보여 준다고 말한다. 수기란, 무엇보다도 잘못의 소재를 자신한테서 찾는 내향성이고, 타인이 강요하거나 권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성찰의 주체가 되는 자발성이며, 재판과 같은 엄격함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엄격함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충실성을 뜻하는 충(忠)과 이어진다.
자왈(子曰), 이의호(已矣乎)! 오미견불능현기과이내자송자야(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
이의호(已矣乎)는 탄식하는 말로 ‘끝장이구나!’ ‘다 끝났구나!’ 하는 뜻이다. 주희는 이 말이 “끝내 만나지 못할까 두려워서 탄식한 것”이라고 했다. 송(訟)이란 재판을 말한다. 재판을 하는 것처럼 무겁게 잘잘못을 가려서 자신을 꾸짖는 것이다. 주희는 “사람이 허물이 있을 때 스스로 아는 자가 드물며, 허물을 알고서 마음속으로 스스로 책망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더 드물다”면서 “마음속으로 스스로 책망할 줄 알아야 뉘우침과 깨달음이 깊고 간절해서 허물을 고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리링은 자송을 자기와 자기가 논쟁하는 것, 즉 자기 비판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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