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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집어들고 읽어라(Tolle, Lege) _ 읽기의 힘에 대하여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고백』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묻는다. 인생 전체가 비틀린 것 같은 지독한 불안에 사로잡혀 안절부절못하면서 그는 정원을 이리저리 서성인다. 마음이 좀처럼 답을 얻지 못하고 미몽(迷夢)이 길어질 때, 문득 옆집에서 아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톨레 레게(Tolle, Lege)!”

집어들고 읽어라.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 계시하지 못할 때, 흔히 아이의 입을 빌리곤 한다. 읽어라. 희망 없는 좌절이 길어질 때, 해답 없는 절망이 연이어질 때, 하느님은 말한다. 

집어들고, 읽어라.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를 다시 읽었다. 성서를 읽은 후 신의 목소리를 듣고, 교회를 다시 써서 세계의 기울어진 축을 바로 세웠다.

읽기는 인간이 혼자 살아가지 않도록 막아 주는, 신 없이 신의 언어를 확인하게 해 주는 인류 지혜의 산물이다. 예, 알겠습니다. 집어들고 읽을게요. 죽음의 어쩔 수 없는 허무 앞에서 공포에 떠는 사람도, 일상의 무의미에 지쳐서 길을 잃은 사람도, 곤란의 늪에서 일어서고 혼돈의 숲에서 길을 얻으려면, 집어들고 읽어야 한다.

아아, 절망의 시대다. 혼란과 허무, 무기력과 허탈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삶의 자리가 재개발되면서 불쑥 앞날 모를 어둠이 펼쳐지고, 일상의 평온을 즐기던 이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고 지옥으로 끌려간다. 보금자리를 지키려 나섰던 이들이 불에 타서 울부짖고, 즐겁게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바다 속에서 영원히 울음을 운다. 재난이 삶의 기본조건이 되어버린 세계다. 단테는 『신곡』에서 이러한 삶의 상황을 두고 이렇게 노래한다.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네.” 

인간으로 마땅히 가야 할 삶의 길을 잃어버리고 세계의 어둠에 갇혀 있게 된 것, 그것이 오늘날 물질의 풍요에 대한 탐욕한 추구를 대가로 해서 우리가 받아 든 성적표다. 단테는 이를 미리 알았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단테는 길을 잃어버린 방랑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단테한테 산다는 것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미지 속에서 더듬거리면서 한 발씩 내딛는 것과 같다. 우리는 누구나 길을 잃은 채로 살아간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항상 올바름 속에서, 썩 괜찮게 살고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그를 ‘신’ 또는 ‘괴물’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궤도를 이탈한 별”로서 살아간다. 이는 ‘신 없는 시대’를 사는 비루한 현대인들의 운명이다. 이 불행한 시절에 단테는 우리한테 겁에 질려 도망치다 넘어지거나 숲속을 떠도는 짐승이 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집어들고 읽어라. 

단테가 어둠의 공포에 질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무작정 도망칠 때,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그의 앞에 나타나 손목을 잡고 지옥의 문으로 그를 이끈다. 그리고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로 지옥과 연옥을 차례로 여행하면서 천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단테를 궁극적으로 구원한 것은 베아트리체이지만, 단테를 그녀의 앞까지 인도한 것은 그가 평소에 읽었던 베르길리우스의 시였다. 읽기를 통해 단테는 영혼의 방황으로부터 간신히 구원의 실마리를 얻었던 것이다. 그러니 집어들고 읽어라. 

읽기는 삶에 풍요를 부풀리는 생명의 풀무이자 길에 방향을 제시하는 생명의 나침반이다. 그러니, 오늘, 모두, 집어들고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