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독자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2016 독서콘퍼런스 100분 토론 요약
강릉시에서 열린 2016 독서콘퍼런스 100분 토론의 사회를 보러 갔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독서 운동가, 연구자, 도서관 사서 등이 책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어울려 이틀 동안 여러 주제를 두고 세션 별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후, 이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자리였다. 독서동아리 회원들도 다수 참여하여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2016 독서 컨퍼런스 자료집』에 실린 「책을 사랑했던 민족, 그러나 책을 읽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에서 성균관대 철학과 이종관 선생은 ‘인생의 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는 선물은 책과 함께 책이 열어 주는 의미 세계에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들이 읽는 책 중에서 진정으로 잘 이해하고 감동받은 책을 ‘인생의 책’이라고 부른다. (112쪽)
입시나 논술을 위해 읽는 책은 ‘인생의 책’이 될 수 없고, 삶을 더 나은 길로 접어들도록 하는 ‘인생의 책’이 없다면, 읽는 인간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독서를 진흥하려면 억지로 책을 읽히려 하지 말고, 스스로 ‘인생의 책’을 고를 자유로운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표를 하면서 독일에 유학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아이한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밤마다 아이한테 책을 읽어 줄 뿐이다. 이를 통해서 독일 아이들은 책을 자연스레 사랑하며, 또 아무도 무엇을 읽어라 강요하지 않기에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독서를 통해서 인생의 책을 스스로 골라서 마련할 수 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안찬수 사무처장은 「‘책 읽는 대한민국’의 진화를 위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지식 접근의 권리와 기회를 누리는 사회, 돈이 없더라도 원한다면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 정보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함으로써 시민 각자가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창출하고 보람을 느끼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입니다. (114쪽)
안 처장은 ‘책 읽을 권리’(讀書權)를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여 널리 퍼뜨리고, 전파라는 공유 자원을 사용하는 텔레비전 방송에 책 프로그램을 1퍼센트 이상 의무 편성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개인적으로 안 처장의 발표에서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인구 1만 명당 하나 정도로 공공도서관을 육성해 가자는 것이었다.
“걸어서 10분, 자전거로 5분 이내”라는 보충 설명이 있었듯이, 도서관이 시민들 사는 곳 주변에서 보이게 함으로써 누구나,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초등학교 숫자와 대체로 일치한다. 공공도서관을 통해서 가정 형편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면 마음껏 ‘책 읽을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책 생태계의 보존만이 주요 목적은 아니다.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초등학교가 존재하고, 초등학교에서의 교육을 통해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몸에 새긴 시민으로 자라는 것처럼, 공공도서관의 존재는 각 지역 사회가 자기 공동체에 중심 의제를 스스로 설정하여 학습하고 토론하는 민주주의의 공론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정말로 중요하다.
책과교육연구소 김은하 대표의 발제 「타깃 독자에 맞는 독자개발」은 올해 수행된 최신 연구 자료와 현장에서의 펄떡이는 경험이 결합되어 있기에 시사점이 무척 풍부했다. 오전 발표의 맥락을 이어받아서 김은하 대표는 비독자를 독자로, 간헐적 독자를 습관적 독자로 만드는 독자 개발의 이슈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김은하 대표의 발제는 따로 정리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년’ ‘중노년의 여성’ ‘남성 청소년’ ‘저학년자’는 비독자와 간헐적 독자가 많은 집단입니다. “한국인의 독서 경험은 매우 양극화되어 있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매우 이질적인 집단이다.” 저는 이를 독서문화 정책과 캠페인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중략) 연구 과정에서 놀란 점은 (중략) 청소년 대상의 독서 지도와 대회가 비독자와 간헐적 독자를 더욱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습니다.(119쪽)
김 대표의 발표는 전반적으로 참조점이 풍부해서 한 부분 한 부분이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출판 편집자로서 우선해서 귀담아들을 부분은 “습관적 독자든, 간헐적 독자든 간에 중고생들은 전자매체 읽기(웹툰, 웹소설 읽기)를 무척 선호한다는 점”이다. 책을 습관적으로 읽는 아이들은 고작 절반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어쩌다 책을 읽는 간헐적 독자이거나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비독자다.(고등학생은 습관적 독자의 비율이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전자매체 읽기는 초등학교 6학년을 기점으로 책 읽기보다 빈도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 종이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전자매체를 안 읽는 것도 아니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전자매체로도 많이 읽는다. 한마디로 말해, 읽기에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전자매체 읽기에 익숙하다고 해서 반드시 종이책을 읽는다고는 볼 수 없다. 심지어 전혀 안 읽는 경우도 흔하다. 이 독자들이 별도의 대책 없이 그대로 자라날 경우, 종이책 출판의 미래가 어떠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다. “전자매체 읽기는 부모의 책 읽기 교육과 거의 상관이 없지만, 종이책 읽기는 상관관계가 아주 높다. 즉, 어릴 때 가정에서 자주 책을 읽어 주었던 아이들일수록, 자주 종이책을 읽는다는 점”이다. 종이책 독자 개발을 위해서 출판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가 아주 명료하게 드러난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의 폭풍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출판은 비독자를 독자로, 간헐적 독자를 습관적 독자로 만드는 실천 없이는 전혀 버틸 수 없다. ‘독자 개발’은 출판의 공적 영역에서 가장 긴급하게 다루어야 할 과제다. 김 대표의 연구와 발표는 이와 관련한 풍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강원대 김남연 교수의 「책 읽는 대한민국,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프랑스에 있다는 ‘필로카페’의 소개였다.
프랑스에는 필로카페라는 것이 전국적으로 진행된다. 규칙적으로 주당 1회나 격주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철학 전공자나 교수 그리고 일반인이 섞여서 어떤 주제에 관하여 토론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다. (127쪽)
출산율 축소에 따른 인구 감소와 대학 진학률 저하로 인한 수요 부족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는 대학에서, 그 와중에 인문학 관련 학과의 통폐합이 진행되는 와중에 인문학의 한 탈출구로서 연구해 볼 만한 주요한 사례로 생각된다. 방통대 유범상 교수가 진행하는 인천의 마중물 세미나와 비슷한 콘셉트로 보이는데, 전국적으로 이와 비슷한 카페를 조직하고 운영한다면 인문학 확산과 시민 가치의 정립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독서 전문가들이 모여 최신 연구 성과와 담론을 발표하고 공유하면서 미래의 대안을 논의하는 ‘2016 독서 콘퍼런스’ 같은 행사를, 출판에서도 정기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다고 생각되었다. 도서관 사람들은 ‘전국 도서관 대회’를 열어 모범이 된 행사를 이미 오래전부터 치르고 있다. 곧 서점인들도 모여서 ‘서울 서점인 대회’가 열릴 것이다. 출판 역시 서울국제도서전이나 와우북페스티벌 등의 계기를 활용해 ‘2016 출판 콘퍼런스’를 여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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