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 공자가 말했다. “누가 미생고가 곧다고 하느냐?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얻으려 하니, 이웃집에서 얻어다 그에게 주었다.”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
미생고는 곧은 사람으로 이름나 있었다. 미생고는 애인과 약속을 지키려고 장마철에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끝내 불어나는 물에 빠져 죽은 미생(尾生)의 설화와 관련 있는 사람이다. 즉, 목숨을 버려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말을 지키려 했으니 미생고는 곧은 사람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공자가 생각하는 곧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식초를 얻으러 왔을 때 자기 집에 식초가 없자 미생고가 이웃집에 가서 식초를 대신 얻어다 건네준 일이 있었다. 공자는 이 일을 예로 들면서 미생고가 솔직한 사람이 아니라고 품평한다. 아름다운 이름을 훔치기 위해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위를 했으니 어떻게 곧은 사람이냐는 뜻이다. 이 일화는 곧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우리한테 불러일으킨다. 다산 정약용이 지적하듯이, 미생고가 한 일은 인지상정으로 누구나 이처럼 행하는 게 언뜻 당연한 까닭이다.
인정이 있다고 해서 곧은 것은 아니다. 공자에게 ‘곧음’은 마음으로부터 곧장 솟아나는 “진실한 감정”(풍우란)을 말한다.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윤리를 따지지 않고 마음이 곧장 움직이는 일이며, 마음의 그러한 움직임을 이성으로 억누르지 않고 곧바로 드러내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원리와 비슷해 보인다. 우물가로 기어가는 아기를 보았을 때, 사람이라면 누구나 깜짝 놀라서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곧음[直]이란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윤리적 행위 이전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움직임으로서, 사람이 인(仁)을 행하도록 만들어 주는 동력이다. 최진석에 따르면, ‘곧음’은 “그 자체가 도덕이 아니라 도덕 행위를 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마음 상태, 즉 출발점”이다. 미생고는 식초가 없으면 없다고 ‘곧바로’ 털어놓지 않고 이웃집에서 몰래 빌려다 주었으므로, 친절한 사람은 될 수 있을지언정 곧은 사람일 수는 없다.
부남철은 미생고의 잘못과 관련해 흥미로운 해석을 한다. 인이란 수신에서 평천하까지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으로서, 먼저 자기를 사랑하고 다음으로 자기 가족을 사랑하며, 이를 기초로 하여 다른 사람에게까지 사랑이 넘치도록 해야 하나, 미생고는 이 이치를 모르고 자기 집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감히 남에게 은혜를 베풀려 했다. 이는 인의 기초가 되는 ‘곧음’을 억누른 것으로, 결국 인을 이루지 못한 채 사랑부터 먼저 고갈될 게 틀림없다. 공자는 미생고를 예로 들어서 제자들한테 이를 경계했다는 뜻이다. 물론 수신에서 평천하에 이르는 과정은 단계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을 덧붙인다.
자왈(子曰), 숙위미생고직(孰謂微生高直)? 혹걸혜언(或乞醯焉), 걸저기린이여지(乞諸其隣而與之).
미생고(微生高)는 노나라 사람으로 정직한 것으로 이름 높았다. 리링은 그를 약속을 지키려고 장마철에 다리 밑에서 사람을 기다리다 물에 빠져 죽은 미생(尾生)과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숙(孰)은 ‘누구’라는 뜻이다. 첫 문장은 반어적 의미를 담고 있다. 혜(醯)는 식초를 뜻한다. 저(諸)는 지어(之於)의 준말로, ‘~에게’라는 뜻이다. 여(與)는 동사로 ‘주다’라는 뜻이다. 미생고가 이웃에서 식초를 빌려다 다시 빌려준 것은 친절할 수 있어도 곧은 행위는 아니다. 주희는 말했다. “공자는 그 뜻을 굽혀 남에게 아첨하고, 아름다움을 빼앗아 인심을 샀으므로 곧음이 될 수 없다고 질책한 것이다.” 범중엄은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며, 있으면 있다고 하고 없으면 없다고 하는 것이 곧은 일”이라고 하면서, 이는 “작은 것도 삼가야만 함을 가르친 것”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