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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최근 출판의 4가지 베스트셀러 전략(대산문화)




베스트셀러는 늘 사후적 탐구의 대상이다. 책이 언제, 어떻게, 왜 팔리는지 미리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어쩌다 살짝 감이 있다. 내용을 읽고 콘셉트를 뽑고 배열을 고민하고 디자인을 구상하면서 독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순간, 이 책은 다들 좋아해 주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아주 흔한 일은 아니다.

베스트셀러는 통로이고 상징이다. 그 책을 읽는 독자를 보여 주고, 그 책이 있는 사회를 드러낸다. 모두 같이 꾸는 꿈 같다. 꿈꾸고 난 다음엔 누구나 한마디 말을 보탤 지도가 되지만, 아무도 일부러 그 지도를 그릴 수는 없다. 책은 ‘소수 미디어’에 속한다. 수천 명 정도, 잘해야 수만 명 정도, 내용에 대한 깊은 관심과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이 주로 읽는다. 베스트셀러는 비정상, 즉 제 영역을 넘어서 증식한 이상세포다. 해석의 대상이지 설계의 대상일 수 없다는 뜻이다.

베스트셀러에 ‘또다시’는 있을 수 없다. 배후에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질서나 구조가 있고, 그 결과에 따라 베스트셀러가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자체가 그 자체로 질서요, ‘고유한 문법’이다.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면, 사후성(afterwardness)이야말로 베스트셀러를 이야기할 때 무조건 염두에 두어야 할 개념이다. 하나의 꿈을 해몽했다고 해서 다음에 또 그 꿈을 꿀 수 없듯, 하나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해서 다음 베스트셀러를 이어갈 수는 없다. 우연히, 벼락처럼, 알지 못한 힘에 의해 베스트셀러는 편집자 앞으로 떨어질 뿐이다.

그러나 사후적이라 해서 ‘해석’하고 ‘정리’하는 것이 전혀 뜻 없는 일만은 아니다. 분석해 두면 다음에 다시 베스트셀러를 내는 데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다. 독자를 이해하는 행위를 통해서 분석가 자신을 단련할 수 있기 때문이요, 다음에 다시 분석할 때 도움이 될 통찰을 조금은 챙길 수 있는 까닭이다.

베스트셀러들 사이에 전략적 공통점은 없다. 설사 그런 게 있더라도 그저 마주친 것이지 부러 만난 것은 아니다. 시인 김행숙의 표현처럼, 마주침은 때때로 발명하는 것이기도 하고, 발명된 이후에는 혹여 저 홀로 현실로 성장할 수도 있으니, 네 갈래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그러나 여전히 겹쳐진 채로 있을 것이다.)

첫째 갈래, 독자의 언어로 쓰인 콘텐츠를 골라내는 안목만큼은 어떤 경우에든 필수적이다. 책은 근본적으로 솔루션 도구이다. 책을 포함하는 거대한 솔루션 가치사슬의 일부다. 독자의 문제를 (즉시, 쉽게, 깊이 등등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때 참된 가치를 얻는다. 읽기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저자의 목소리를 독자의 내면으로 실어 나른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함께 여행함으로써 독자는 자신의 진짜 문제를,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부터 발견한다. 많은 베스트셀러는 독자와 공명하면서, 독자와 스텝을 맞추면서 춤을 출 줄 안다. “말은, 글은 모노가 아니라 스테레오다. 경험과 이미지가 합쳐서 스테레오, 즉 입체가 된다. 주 멜로디 아래 저음 리듬 악기가 깔린다.” 최인호의 말이다. 함께 연주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면서 쓴 글이 아니면 처음부터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아주 어렵다.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편집자의 통찰력은 대부분 독자의 진짜 문제를 찾고, 독자와 함께 호흡한 콘텐츠를 찾는 일에 바쳐진다. 무엇을 하든, 여기가 출발점이다.

문학 출판에서 글이 좋은 신인작가에 대한 ‘과도해 보이는’ 갈망과 투자는 당연하다. 20대가 과잉 대표하던 도서 시장이 세대별 독서율이 올라감에 따라 균형을 잡는 중이지만, 삶의 속도를 항상 가속하면서 과거를 잃고 살아가는 현실상 ‘감수성의 혁명’은 지금으로서는 출판에 영구적으로 요구된다. 김승옥, 최인호, 이문열, 신경숙, 공지영, 김영하, 정이현, 김연수, 김애란 등으로 이어지는 베스트셀러 계보도가 늘 세대교체의 형식을 띤 것은 그동안 전략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김훈, 조정래, 황현산 등 ‘할배들의 반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등 진정 기미가 보이는 것은 사회 변화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문학 다양성 측면에서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다.

둘째 갈래, 책이나 책에 담긴 내용을 소셜오브젝트(social object)로 만든다. 매스미디어 시대가 저물고 소셜미디어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출판 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오가닉 미디어』의 저자 윤지영에 따르면, 매스미디어는 단지 신문, 방송, 잡지 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대중(mass)을 생산하는 미디어로 정의해야 한다. 대중은 콘텐츠를 수신하고 소비할 뿐 만들고 발신하지 않는다. 이 시대는 이제 완전히 지나갔다. 소셜미디어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을 일괄하는 게 아니라 소셜관계를 만드는 미디어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독자들은 책을 읽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책을 소개하고 평가하고 이야기하고 퍼뜨린다. 출판사나 저자가 소셜관계를 만들 수 없다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가망은 아주 낮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한빛미디어, 2014)의 저자인 채사장은 원고를 완성해 두고 나서 출판사에 보내는 대신 소셜미디어인 팟캐스트를 열어 독자를 만나는 일부터 시작했다. 책이 아니라 독자 관계부터 생산했다고 할 수 있다. 무명의 논술강사였던 채사장으로서는 책을 내줄 출판사도 없었고, 설사 출판되더라도 읽어줄 독자가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그러나 친구 셋이 시작한 팟캐스트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이후에는 당연히 책을 출판할 수 있었고, 초기부터 팟캐스트 청취자들이 적극적으로 출간을 알리는 등 콘텐츠 공유에 나서면서 손쉽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언제가 이 책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출판사가 독자와의 쌍방향 소통마저 넘어서는 다중 소통의 장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다중 소통을 일으키는 가치를 ‘연결 가치’라고 하는데, 앞으로 콘텐츠 기업이 고객들한테 제공해 줄 수 있는 건 ‘연결 가치’밖에 없습니다. 고객들은 ‘연결 가치’를 제공하기만 하면 이를 온갖 연결에 활용하면서 그 가치에 알아서 보답합니다.” 물론 연결 가치를 제공하는 저자나 출판사도 독자로부터 보답받는다. 많은 판매로 말이다.

셋째 갈래, 커뮤니티를 생성하거나 이용한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사회다. 그러나 연결은 평등하고 균일하지 않고 집중과 분산을 반복한다. 사람들은 인물, 장르, 사물, 사건 등에 대한 선호가 집적되는 특이점 주변으로 열광하면서 몰린다. 부피가 제로이고 밀도는 무한대인 특이점은 늘 빅뱅의 전조다.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밀도가 높아지면 큰일이 벌어질 확률도 같이 높아진다. 게다가 네트워크 효과는 거듭제곱 법칙을 따른다. 사람들이 몰릴수록 집중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눈으로 뒤덮인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돌멩이를 연상하면 된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하더라도 나중에는 들판을 휩쓸어버릴 것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다. 베스트셀러는 같은 지향을 품은 이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로부터/커뮤니티를 거쳐서 흔히 만들어진다. 미국의 출판인 보브 스타인은 “내일의 성공적인 출판사는 저자와 독자 주변에 커뮤니티를 창조한다.”라고 말했다. 

2015년 2월, 엘렌 심의 『고양이 낸시』(북폴리오)가 출간 직후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른바 ‘묘족(猫族, 고양이 애호가)’들이 움직인 덕분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는 실핏줄처럼 온오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양이 육아(?) 정보를 교환하고, 고양이 사진을 자랑하고 공유하고, 때때로 오프에서 만나 축제도 여는 등 일상적 열광이 대단하다. 북폴리오는 오래전부터 묘족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고양이 관련 책들을 연이어서 펴내고 있다. 길고양이의 삶을 다룬 이용한의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2009)를 비롯한 ‘안녕 고양이’ 시리즈,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인 채유리의 『뽀짜툰』(2014) 시리즈 등이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후 장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모두 묘족 카페나 동호회에서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다.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사랑받았고, 책이 나온 후에도 관련 커뮤니티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가치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속으로 들어가고, 그곳으로부터 콘텐츠를 발신하기는 이제 베스트셀러 출판의 중심 전략으로 성숙해 가는 중이다.

넷째 갈래, 트렌드에 올라타서 이끌고 가기. 책은 심층 미디어다. 이 말의 뜻은 두 가지다. 표층의 움직임이 있고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고, 표층의 움직임 아래에 있는 더 깊은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그래서 책은 늦게 오지만 길게 갈 수 있다. 나중에 나타나지만 앞설 수 있다. 표면에서 바람을 받아 요동치는 잔물결들이 아니라, 물결들을 장기지속적으로 끌고 다니는 심해의 흐름을 보고한다. 책은 ‘전혀’ 예측하지 않는다. 때때로 포즈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기나긴 호흡 덕에 그리 보이는 것뿐이다. ‘지나간 미래’야말로 책 콘텐츠의 핵심 전략이다.

베스트셀러는 트렌드 자체에 투자하지 않고, 트렌드의 호흡에 투자한다. 현상을 직관하는 게 아니라 본질을 성찰한다. 의학의 발달에 따라 인간 수명이 급속히 연장되면서 전체 인구에서 노인 인구의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지구 전체 지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중이다. 이 트렌드는 책 문화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인생 후반전의 휘슬에 해당하는 ‘마흔’을 키워드로 하는 책들이 서서히 늘어난다. 스물에는 아주 드물게 『논어』를 읽지만, 마흔에는 대부분이 한 번쯤 『논어』를 읽을 결심을 한다. 신정근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 2011)이 열풍을 부른 것은 이런 뜻에서 당연하다. 스물이 읽는 논어와 마흔이 읽는 논어는 다르다. 책도 그에 맞추어 꼼꼼하게 구성되었다. 초고령사회는 트렌드이지만 ‘마흔’은 발명이다. 어찌 보면 ‘마흔’이 심층의 언어이고 ‘초고령’은 표층의 언어이다. 마흔은 지금의 현상이 아니라 고금의 현상이다. 행위에서 성찰로 귀환하는 운동의 이름이다. 이는 생로병사를 결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로부터 온 말이다. ‘초고령’이라는 말에는 독자가 움직이지 않지만, ‘마흔’이라는 말에는 독자가 움직인다. ‘마흔’은 인간의 삶에 필연적으로 찾아드는, 또 다른 삶의 시작을 상징한다. 이 상징의 힘은 너무나 거대해서,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를 타고 번져나가면서 사람들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베스트셀러는 이 파고듦의 결과일 뿐이다. 베스트셀러가 세계를 발명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트렌드를 파고들어가서 삶의 본질에 닻을 놓으려는 책의 오랜 열정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해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이 만들어지지만, 베스트셀러 전략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뿐, 그것도 간신히, 더 이상은 없다. 


* 이 글은 《대산문화》 2015년 겨울호에 실렸습니다. 아래는 제 강의 홍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