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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안 팔리더라도 좋은 책을?




나는 "안 팔리더라도 좋은 책"이라는 출판 인터뷰의 키치가 아주 불편하다. 사실, 이런 말은 출판 생태계에서 저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안 팔리더라도 좋은 책을 쓸 수 있다. 왜? 파는 것은 출판사와 서점이 책임질 터이고, 그러지도 못하면 출판될 수 없을 테니까. 자비로 40부를 인쇄해 단 7부가 팔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처럼 미래의 책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좋은 책을 내는 것은 출판사의 당연한 의무이며, 출판 생태계를 작동시키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아무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출판사는 저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팔리는 책만 출판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 건 출판의 타락일 터이다. 출판의 임무는 따로 있다.

저자가 공들여 쓰고 편집자가 정성껏 만든 좋은 책을 독자가 발견하도록 돕고 이를 위한 연결을 확보하는 것이 출판사의 진짜 존재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이 책생태계가 아니라 출판생태계가 따로 존재하는 근거다. 오늘날 출판은 이 사실을 분명히 의식할 필요가 있다. 출판사는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쓰기와 읽기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분명한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판사는 갈수록 약해질 것이다.

채사장의 신간은 결국 웨일북이라는 새로운 출판사에서 나왔다. 아직 정확히 확인은 못했지만, 이지성, 김난도와 같은 케이스인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북드라망과 같은 케이스이거나.(한빛비즈 편집자가 대표가 되었다.) 프레시안 좌담에서 이 책을 다루면서 이야기했듯이, 책의 발견에서 저자의 역할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출판사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일단 성공한 이후에는 이처럼 저자가 먼저 이탈할 것이다.

출판은 "안 팔리더라도 좋은 책"이라는 출판 1.0의 담론 체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출판 2.0은 좋은 책을 어떻게 독자에게 잘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아침에 오래된 모 출판사를 물려받은 사장님 인터뷰를 보고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거기에 비전은 없다. 지금 출판에 필요한 것은 인간적 감동을 넘어서는 비전을 공유하는 감동이다. 그런 거대한 비전을 이야기하는 출판을 보고 싶다.

보고서를 끼적이다가 지쳐서 "출판 2.0 시대의 출판 전략" 강의를 마련하면서 든 생각을 가볍게 적어본다. 강좌에 대해서는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