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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논어 공부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2]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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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때에 맞추어 그것을 익히면 역시 즐겁지 않겠는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역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답지 않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子曰),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먼저, 자왈(子曰)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자(子)는 ‘선생’이라는 뜻입니다. 본래 경대부(卿大夫)를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스승을 공자로 부른 것은, 그가 노나라에서 대부를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자는 스승-제자 관계를 창시한 사람이었으므로, 이 말은 점차 스승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대개 공자(孔子), 맹자(孟子), 노자(老子), 손자(孫子) 등 사람 성 뒤에 쓰여서 그 사람을 높이곤 하지만, 지금처럼 단독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논어』에 나오는 ‘자왈(子曰)’의 자(子)는 모두 공자를 가리킵니다. 자(子) 대신 부자(夫子)라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에서 이(而)는 접속사로서 여기에서는 순접입니다. 학(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학을 각오(覺寤), 즉 ‘알지 못했던 것을 깨우치는 일’로 해석합니다. 주희는 학을 효(效), 즉 ‘본받아 아는 일’로 풀이합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학(學)은 몰랐던 것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아는 것일까요? 예(禮)입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시(時)는 ‘때때로’ 많이 해석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제때에’ ‘알맞은 때에’ ‘때맞춰’ 등으로 대부분 해석하고 있습니다. ‘항상’이라고 새기기도 합니다. 습(習)은 ‘익히다’라는 뜻입니다. 이미 아는 것을 반복해서 몸에 익숙하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주희는 이를 ‘본받는 것을 그침 없이 계속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之)는 앞에 나온 ‘학(學)’을 받습니다.

불역열호(不亦說乎)는 반문입니다. 역열(亦說)이라고 써도 뜻은 똑같지만, 말하려는 바를 강조하려고 한 표현입니다. 열(說)은 ‘설’이라고 읽으면 동사로 ‘말하다’라는 뜻이지만, 형용사로 쓰일 때에는 ‘열’이라고 읽고 열(悅), 즉 ‘기쁘다’로 새깁니다. 호(乎)는 의문을 나타내는 어조사입니다. 


유붕(有朋), 자원방래(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

유(有)는 두 가지로 쓰입니다. 하나는 ‘~을 갖고 있다’라는 뜻의 동사이며, 다른 하나는 ‘어떤’이라는 뜻의 관형사입니다. 이 문장에서는 어느 쪽으로 풀이해도 뜻이 통하므로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습니다. 단순히 ‘벗이’라고 옮기면 됩니다. 포함(包咸)은 붕(朋)을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동문(同門)이라고 보았습니다. 배병삼은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로 보았습니다. 단지 어릴 적 친구가 아니라 공부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自)는 여기에서는 ‘~로부터’라는 뜻입니다. 방(方)은 ‘방향’ ‘방법’이라는 뜻이 아니라 ‘장소’를 뜻합니다. 배병삼은 자원방래(自遠方來)를 ‘지역적 개념’이 아니라 ‘벗을 만나기 위해서 들인 공력’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락(樂)은 앞 문장에 나오는 열(說)과 같이 ‘즐겁다’라는 말입니다. 열(說)이 내면에서 나오는 즐거움이라면, 락(樂)은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뜻합니다.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인(人)은 ‘남’ ‘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부지(不知)의 지(知)는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이라는 뜻으로 흔히 새깁니다. 때때로 ‘남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로 해석하는 이도 간혹 있습니다. 류종목에 따르면, 이 문장에서 군자(君子)는 형용사로 보아야 앞 문장과 호응이 맞습니다. 따라서 ‘군자가 아니겠는가’가 아니라, ‘군자답지 않겠는가’로 해석해야 합니다.

군자(君子)는 본래 ‘남을 다스리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사(士) 또는 대부(大夫) 이상의 신분을 가진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를 그 신분과 분리하여, 남을 다스릴 만한 학문과 품성을 갖춘 사람이라는 의미로 썼습니다. 이는 군자에 해당하는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 합당한 품성을 갖추지 않으면 군자라 할 수 없다는 뜻이며, 당연히 그 역도 성립하므로 대단히 혁명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공자는 신분에 따라 제자를 가려 받지 않았고, 합당한 실력을 길러주어 낮은 신분일지라도 사(士)의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춘추시대의 혼란기에 국가를 경영하는 데 수많은 인재가 필요하지 않았더라면 공자의 이런 시도는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로 치부되었을 것입니다. 공자를 임용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공자의 집단이 여러 나라에서 환영받은 이유는 공자 아래에 군자의 역할을 할 만한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군자를 이야기할 때에는 이런 점을 함께 살펴야만 합니다.

그런데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왜 화가 나지 않는 걸까요? 배병삼에 따르면, “자기 길에 대한 치열한 믿음” 때문입니다. 내가 걷은 이 길이 ‘당위의 길’ 또는 ‘운명의 길’임을 자부하면서 주변의 말이나 눈에 상관하지 않고 마땅히 그 길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