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탐사로 다져진 엄밀한 사실을 토양 삼고 음악 소리가 들릴 정도로 유려한 문장을 줄기 삼아서 공론(公論)의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다. 저자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면서도 전혀 상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세계의 중심 문제를 드러내려는 올곧은 정신, 취재를 누적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치열한 열정만이 허락된다.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주제 하나만을 다루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세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깊이 파고들면서도 전체를 동시에 통찰하는 힘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논픽션이다.
《뉴요커》의 중국 전문기자 에번 오스노스는 아직 이름이 낯설다. 『야망의 시대』(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2015)가 첫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썼다. 논픽션의 모범이 존재한다면 우리 눈앞에 있는 이 책은 분명 거기에 속할 것이다. 퓰리처상 수상 이력의 민완기자답다. ‘2014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 된 것이 무척 당연해 보일 정도다.
오늘날 ‘중국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의 열망이다.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단기간에 새로운 억만장자들을 배출한 나라다. 에너지, 영화, 맥주, 백금 등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또 전 세계 다른 나라를 모두 합친 것보다 빠른 속도로 철도와 공항을 건설하는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중국은 동시에 졸부근성으로 이룩된 기이한 건축물이 곳곳에 들어서는 나라다. 부정부패가 대륙 전체를 한없이 좀먹어 들어가는 나라다. 공산당 일당 지배를 유지하려고 인민에 대한 통제와 탄압이 끝없이 계속되는 나라다. 그래서 서구적인 시각으로 보면 도대체 언제 봉기가 일어나서 붕괴될지 모르는 기이한 장소이기도 하다.
저자 오스노스는 현대 중국의 이러한 이중성을 아래로부터 파고들어간다. 그는 체제 자체의 허실이 아니라 체제 안에서 인생을 불태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포석으로 깔고 내부에서부터 중국의 실체를 건축해 간다.
제목의 ‘야망’은 공자의 말에서 따 왔다. “삼군으로부터 그 장수는 빼앗을 수 있어도 필부로부터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의 ‘뜻[志]’을 현대적으로 풀어서 ‘야망’이라고 한 것이다.
오스노스가 보기에, 현대 중국은 ‘야망’의 시대다. 시골의 갑남을녀라도 노력하면 거대한 성공을 이룰 수 있음을 믿고 살아온 시대라는 뜻이다. 실제로 기적이 수도 없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또 인구에 회자되면서 가슴속에 거대한 포부가 없는 사람은 하찮게 경멸당하는 심리 구조에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포획된 상태다.
타이완의 평범한 군인에서 중국으로 망명해 유명한 경제학자가 되고 세계은행 부총재까지 역임한 린이푸, 시골 출신으로 온라인데이트 사이트를 개설해 거대한 부를 움켜쥔 공하이난, 톈안먼 사태를 주도하고 이후로도 반체제 활동을 계속해 오다가 수감되는 등 각종 탄압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은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작가 류샤오보, 유명 소설가 아이칭의 아들로 태어나 문화대혁명을 혹독하게 겪고 자랐으며 예술을 통해서 체제 밖 자유를 꿈꾸는 아이웨이웨이, ‘사전 속의 단어들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질 텐데’라고 말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영어 공부를 통해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는 스물여덟 살의 청년 마이클 등 여러 인물들의 삶을 추적해 가면서 저자는 ‘중국의 꿈’을 확인해 간다.
그 결과, 오스노스는 변화된 세상에서 부쩍 힘을 길러가는 개인과 공산당 일당지배라는 권위주의 체제가 지금 중국을 무대로 격렬한 격투를 벌이는 중이고, 중국의 체제는 조만간 일정 수준 이상의 변화 없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서구인 특유의 이런 식상한 결론에 있지 않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자부와 좌절 등 우리가 그렇게나 궁금해 하는 중국인들의 ‘진짜’ 모습이 그 과정에서 책 속의 문장들을 박차고 선연히 솟아오르는 데 있다. 정치, 경제, 문화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격변이 일어나고 그 황하처럼 거친 시대의 물결 속에서 부침하는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대하소설이라도 읽는 듯 생생해서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오바마 대통령이 동네 서점에 들렀다가 이 책을 골라 산 것은 아마도 중국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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