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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신사동에 대하여(문화일보 기고)


《문화일보》에서 기획 연재 중인 「느낌이 있는 ‘신(新) 풍물기행’」에 기고한 글이다. 내 젊음을 보냈던 신사동 거리를 소회와 함께 소개했다. 여기에 옮겨 둔다.



사람에게 고향은 하나가 아니다. 대대로 이어 살아온 조상의 고향이 있고, 몸을 얻어 자란 육체의 고향이 있으며, 밥 한 술 먹다가도 천 겹 감정이 너울지는 영혼의 고향이 있다. 또한 평생 의지해 살아갈 세계관의 틀이 생겨난 정신의 고향이 있고, 밥벌이를 하면서 혼신을 다해서 어른으로 살아간 사회적 고향이 있다. 내 조상의 고향은 충남 홍성군이고, 내 육체의 고향이자 영혼의 고향은 서울시 중구 약수동이며, 내 정신의 고향은 관악산 자락 아래 자하연 옆쪽이거나 녹두거리의 술집들이다. 내 사회적 고향은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이다. 문학만 아는 철없이 낭만적인 초보 편집자로서 경력을 시작한 이래 이곳에서 삶에 뼈와 살을 붙이면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면서 이십여 년을 보냈다.

신사동(新沙洞)은 이름 그대로 모래의 땅이다. 어린 시절 동네 형들 손에 이끌려서 한강 다리를 건너와 개구리를 잡아 굽던 곳이고, 중학교 때에는 조숙한 친구 하나가 실연에 괴로워하다가 속절없이 목숨을 버린 곳이다. 오늘 밟은 강물 곁 모래가 어제의 그 모래가 아니듯, 때로는 건물이 때로는 장소 자체가 신사동에서는 모래성처럼 사라진다. 기억이 고스란히 남았는데 자리는 흔적조차 없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사람의 소실이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계속 국밥을 말아 팔았다는 강남시장 안 순댓국집 아주머니도, 직접 담근 장이 담긴 독을 뒤란 가득 늘어세운 된장명가 노인 부부도, 레코드판 수만 장으로 벽면을 메운 채 밤늦게 갈 때마다 산울림의 「황무지」를 틀어주던 음악다방 주인장도 더 이상 신사동에 없다. 나이 들고 병들어서, 재개발에 밀려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 못해서 모래 알갱이처럼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다. 그 자리를 빼곡히 메운 것이 거대 자본이 밀어올리고 있는 프랜차이즈 상점들이나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플래그 숍들이다.

옛 노래 속 선술집들이 이국적 카페들로, 이국적 카페들이 대형 패션몰이나 프랜차이즈 카페들로 순식간에 바뀌고, 그 안에 묻었던 기억들이 통째로 증발한다. 이것이 현대성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으로 녹아 사라지고 현재만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장소가 추억을 나누어 갖지 않는다면 인간의 기억력이란 얼마나 하잘것없는가. 순식간에 윤곽선만 남았다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증발해 버린다.

기억을 더듬어 글을 써보려다가 포기한 채 집을 나선 것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관광객들은 보통 신사역 8번 출구로 나와 대로를 따라 올라간 후 도산대로13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들어선다. 여기가 가로수길이다. 좌우로 거대한 패션숍들이 늘어서고, 사이사이 크고 작은 카페들과 소품 가게들이 반짝거린다. 앞쪽 가게들을 눈요기하다가 발이 지치면 이른바 ‘세로수길’이라 부르는 이면도로 카페에서 커피나 디저트를 즐기면서 수다를 떤다. 이를 서너 번 반복하면서 서서히 앞으로 진행하다가 패션 편집몰인 포에버21을 만나면 오른쪽으로 꺾어 압구정동 광림교회 쪽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면 반나절이 스르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가로수길이 아무리 번화하더라도 신사동의 변방이다. 가로수길을 누빈 것은 신사동에서 보낸 세월의 마지막 5년 정도다. 신사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나 정 붙이고 살아가는 주민은 아니지만 여행자들과는 기억 회로가 전혀 다르다. 8번 출구로 나와 신사4거리 쪽으로 저절로 몸을 되돌린 후 오른쪽 골목으로 꺾는다. 도산대로1길. 이 길의 끝에 민음사가 있다. 한 해에 400종 가까운 책을 펴내는 국내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이고, 내가 20년 동안 몸담으며 내로라하는 글쟁이들과 세월을 함께한 곳이다. 신사역과 민음사 사이의 신사역 뒷골목이야말로 1990년대 이후 한국 출판문화의 한 정수가 우물처럼 웅숭깊게 고여 있는 곳이다. 

고은이 젓가락을 휘날리고, 이문열이 열변을 다하고, 이윤기가 구성지게 노래를 뽑고, 최승호가 멋들어진 시를 읊고, 성석제가 바둑을 두며 유머를 부리고, 장정일이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들릴 듯 말 듯 이야기하고, 김탁환이 역사와 추리를 합쳐 조선 이야기 열풍을 개척하고, 이영도가 서울을 처음 접하고 두리번거리던 곳이다. 술에 취했는지 말에 취했는지 젊음에 취했는지 밤이 이슥하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리를 옮겨가면서 놀던 거리다.

아아, 민음사는 그대로 남았지만 어울리던 사람들, 가게들은 좀처럼 드물구나. 자리를 세 번이나 옮겼지만 산채 정식이 맛깔난 ‘산골’이 있고, 매운 갈비찜과 두부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던 ‘동인동’이 있어 위안 받을 뿐이다. 선배의 강권에 생전 처음 먹어보고 반했던 마산옥의 아구찜도, 돼지 머리고기와 내장의 부드러우면서도 졸깃한 맛을 알려준 ‘원조옛날순대전문점’도, 조금 늦게 생기기는 했으나 저렴한 가격에 참치회의 오묘한 세계에 빠뜨린 ‘청우참치’도 있다.

민음사를 끼고 한 바퀴 돌아 후문을 지나자마자 곧바로 왼쪽 압구정로4길로 접어들면 젊은 패션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와 개성 있고 안주도 맛있는 크고 작은 술집을 만날 수 있다. 카페 포엠, 다스티플레이트, 마망갸또, 경성팥집 등 온갖 디저트 카페들이 널렸지만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 비장탄 꼬치구이로 이름난 이자카야 와라쿠는 서동욱, 김행숙, 강유정 등과 늦은 밤까지 문학을 논하던 곳이고, 빨간색 간판이 인상적인 레드클라우드는 맥주 마니아인 소설가 이승우를 매혹한 곳이다. 

그러나 이 길은 본래 10년 전만 해도 고즈넉한 주택가였다. 답답한 마음에 슬쩍 오후의 사무실을 빠져나와 낡은 담들을 매만지면서 어슬렁어슬렁 거닐던 골목이다. 가로수길은 오직 현재만을 기록한다. 지금도 골목 곳곳에 공사가 한창이다. 허물어지고 세워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몽리는 아직 길모퉁이 그 자리에 있다. 와인은 유행을 타지 않지만 와인바는 반딧불처럼 명멸한다. 가로수길 와인바의 흥망사를 쓰면, 소믈리에의 짧은 역사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몽리는 와인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 저렴한 와인들을 내놓아 낯선 술맛에 혀가 익숙해지도록 해준 곳이다. 구석에 파는 옷가지며 패션 소품이 마음을 누그러뜨려서 동네 선술집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몽리에서 오른쪽으로 발을 옮기면 곧 스페인클럽과 마주친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 풍경이 그리워지면 들러서 파예야와 하몽을 먹던 곳이다. 조금 앞쪽으로 셰프 유희영이 세운 유노추보가 있다. 해장 삼아 즐기던 라멘과 우동의 진한 국물 맛이 저 앞에서부터 벌써 그립다. 덮밥집 노다보울도, 지중해 음식점 세븐블레스도 음식과 문학을 나누던 곳이다. 

노다보울 골목으로 나가서 가로수길로 접어든 후 이국풍 카페들을 차례로 옮겨가면서 커피를 즐기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조리 사라졌다. 몇 년 사이에 도시의 보헤미안을 끌어들이던 카페 거리에서 쇼핑 관광객이 밀려다니는 패션 거리로 바뀐 것이다. 가로수길은 얼마나 끔찍하게 새로운가. 첨단은 기억을 갖지 않는다. 아니, 과거를 품지 않았기에 첨단이다. 가로수길은 짧지만 시대의 심장을 찌르는 바늘 끝과 같다. 그러나 스무 해 넘어 다니던 이 거리가 낯설어 견딜 수 없다. 마음은 청춘이어도 몸은 벌써 늙었단 말이다. 슬프구나!



이곳을 추천합니다.


회사에 후배들이 들어오면 가로수길 순례에 나선다. 한 달도 못 되어서 여기저기 주워섬긴 정보가 나를 넘어선다. 하지만 이곳은 음식의 전장(戰場)이다. 나타났다 잠시 이름을 끌고 영원히 사라진다. 그런데 이 동네에도 스무 해 가까이 장사를 해온 집들이 있다. 비록 내 혀는 짧고 믿을 수 없을지라도, 수십 년 전쟁을 치르며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에게는 다 이유가 있다.


산골 = 큰상차림과 산채정식. 언제나 똑같은 메뉴로 차려내는 집밥 집. 조미를 가하지 않은 담담한 맛이 오히려 기억에 남아 각종 소스에 지친 혀를 달래려고 매주 한 번쯤 들르는 곳.


동인동 = 매운갈비찜과 모듬전. 대구식 매운 요리가 유행하기 전에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곳. 찜으로 혀를 달구고 전으로 식혀 가면서 막걸리를 치는 초저녁 집.


원조옛날순대전문점 = 고춧가루가 들어간 진한 순댓국 국물에 부드러우면서도 졸깃한 머리고기로 시장을 달래던 곳. 인테리어조차 손대지 않은 그야말로 옛날 술집.


마산옥 = 아귀찜보다 다른 집에서 흔하지 않은 아귀수육을 맛보면 좋은 곳. 이를 대는 순간 스르르 잘려 입안을 간질이는 아귀간은 별미 안주다.


할머니현대낙지아구감자탕 = 상호명은 복잡하지만 본래 낙지집이다. 특제 고추장 양념으로 맛을 낸 세발낙지는 매우면서 뒷맛이 정갈하다. 기름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국물을 걸러낸 깔끔한 감자탕도 일품이다.


해남집 = 꼬막, 낙지, 주꾸미, 매생이 등 제철 재료를 전라도식으로 조리해 내놓는 집. 환절기 입맛이 떨어질 때마다 가서 먹던 초무침이 그리운 곳. 매일 찌개 하나와 십여 가지 기본 찬을 벌여놓고 먹던 남도식 백반도 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