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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만드는 일

민음북클럽 문학 캠프를 개최하며


지난 주말에 민음북클럽 패밀리 세일과 1박 2일 문학 캠프가 열렸다. 올해 행사도 독자들의 성원 속에 무사히 치렀다. 문학 캠프에서 짧은 환영사를 했는데, 첫 해인 만큼 즉흥으로 하는 게 왠지 부담이 되어서 짧은 글 하나를 써서 읽었다. 아래에 기록해 둔다.



민음북클럽 문학 캠프를 개최하며

 

일부 생물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아무것도 없이, 그러니까 빈 서판으로 태어납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우리의 뇌는 기초적인 유전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단백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회백색 물질에 최초로 균열을 만들고 파문을 일으켜 신호를 기록하는 것은 소리들입니다. 그것은 신의 목소리처럼 천둥 속에서 들려옵니다.

북소리처럼 두근거리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 허파의 규칙적인 수축과 이완이 빚어내는 숨소리, 자궁을 둘러싼 혈관들 속을 핏물이 때로는 거세게, 때로는 부드럽게 흘러가는 소리, 때때로 저 바깥에서도, 미지의 어떤 소음들이 들려옵니다. 자궁을 둘러싼 양수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이 모든 것을 아련하고 온화한 두근거림으로 변화시킵니다. 이곳에는 폭력도 없고 위협도 없습니다.

그저 절대적인 평화 속에서 자기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 있을 뿐입니다. 뇌는 계속해서 바깥에서 들리는 신호들을 읽어 들이고, 외피를 당겨 주름을 접습니다. 주름들의 연속체,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라고 부르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는 타자의 신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궁의 날들, 그 절대적 평화 속을 드나들면서 속에 원초적으로 기입되는 타자가 있습니다. 바로 어머니입니다. ‘는 어머니의 소리들로 이루어집니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사랑의 말들을 아이에게 건넵니다. 따뜻한 어둠 속에서 아이는 낯설지만 친근하고, 타자이면서 자아인, 탯줄을 통해 육체를 공유한 나이면서 분리가 예정된 남인 어떤 존재와 공생합니다. 소리들, 뇌의 주름을 접는 최초의 소식들, 사랑의 목소리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서 발화하지만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그러나 자기가 아니라 자기 안의 타자에게 전해지는 이 목소리가 바로 우리가 배우는 최초의 말입니다.

Mother Tongue, 어머니의 혀는 이렇게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내 혀가 생기기 전에 이미 우리는 어머니의 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혀는 우리의 혀 밑에 분리 불가능하게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이면서 타자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문학은 자기 안에 내재된 타자의 혀를 가지고 쓰입니다. 세계의 폭력은 우리에게서 끊임없이 사랑의 언어를 빼앗아 가지만 문학은 역행의 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의 언어를 돌려줍니다. 사랑의 언어를 잠시 잊은 후에도 우리는 문학을 통해 내 안에 있는 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전면적 공감을 배웁니다. 그것은 매우 낯선 모험입니다. 두근거리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 속으로 떠나는 길입니다.

나 홀로만 존재하는 세계에는 문학이 없습니다. “나는 나다.”의 세계, 타자가 없는 세계에는 문학이 없습니다. 문학은 그 바깥쪽에서 옵니다. 타자의 목소리를 향해서 열려 있을 때, 황지우 시에 나오듯 나는 너다.”의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고 싶을 때, 사랑의 언어를 부리고 싶을 때, 문학은 비로소 우리 안에서 생겨납니다.

타자는 불투명합니다. 낯설고 귀찮고 불편하고 이해하기 힘듭니다. 때때로 위협적이고 불안을 일으킵니다. 그 이질성을 견디는 힘을 우리는 이미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혀는 본래부터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부터 타자와 함께 붙어 있는 쌍생아입니다.

오늘 민음북클럽 문학 캠프가 처음으로 열립니다. 이 캠프가 여러분의 내면에 기록된 최초의 귀와 혀, 어머니의 혀와 나의 귀를 기억하고 강화하는, 타자를 향해 온전히 여러분을 열어젖히는 시간이기를 빕니다. 저는 이것이 문학의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이 먼 곳까지 오신 것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