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고 슐체가 한국을 찾았다. 만해문예대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나로서는 슐체는 『유럽, 소설에 빠지다』(민음사, 2009)에 실린 「제우스」에서 처음 만난 작가이다. 유럽 대사관에서 각각 자국을 대표할 만한 현대 작가를 한 사람씩 추천받아서 그들 작품을 번역한 이 선집에서 이미 슐체는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선정되었다. 그 후 민음사에서는 이 작가의 대표작인 『심플 스토리』(민음사, 2009)와 『아담과 에블린』(민음사, 2012)을 연속해서 출간한 바 있다. 아직 한국 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통일 과정과 통일이 독일인들의(특히 동독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는 잉고 슐체의 명성은 점차 독일을 넘어서 세계 각국으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잉고 슐체는 이미 1995년에 데뷔작 『행복의 33가지 시선』(국내 미번역)으로 알프레드 되블린 상(1995)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어서 『심플 스토리』, 『새로운 인생』(문학과지성사, 2009), 『핸드폰』(문학과지성사, 2011), 『아담과 에블린』 등의 문제작을 연속으로 발표하면서 독일 현대문학에 신선한 충격을 주어 왔다. 그 공로로 2006년에는 페터 바이스 상을 수상했으며, 올해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상과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잉고 슐체의 방한은 1999년, 2011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다. 과거에 방한했을 때,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1999년에는 아직 그의 이름을 몰랐고, 2011년에는 대산문화재단 초청이었으므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전체 행사를 주관했기에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고려대 서장원 교수와 독일문화원의 주선으로 비로소 그를 만나게 되었다. 문학 독서문화의 전반적인 소프트화와 문학 공론장의 심각한 붕괴 탓에 아직은 많이 읽히고 있지는 않지만, 현대 문학의 심도를 경험해 보려는 진지한 문학 독자라면 아마도 이 작가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는 잉고 슐체
잉고 슐체와는 지난 목요일(8월 8일) 오전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방한 및 만해문예대상 수상을 기념하는 간단한 기자 간담회가 있었고, 우리는 파이낸스빌딩 지하 용수산으로 옮겨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수사가 거의 없는 직설적 화법을 구사했으며 권위가 없고 소탈했다. 또한 시대에 대한 소명 의식이 넘쳤던 이전 세대 독일 작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었다. 기자간담회에서 슐체의 그러한 태도는 경험이 많지 않았던 분의 통역과 함께 기자들을 적잖이 당혹스럽게 했다. 나한테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조각돌을 담은 봉지를 선물로 건네면서 “가짜가 진짜이기를 바란다.”라고 웃어넘기는 모습에서 적잖은 인간적 정(情)까지 느꼈다. 오후에 같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나는 다른 일정 때문에 회사로 급히 돌아가야 했지만, 그의 다음 책 역시 아마도 민음사에서 출간할 것이기에 조만간 책과 문학의 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기자 간담회에서 나온 잉고 슐체의 여러 말은 대체로 아래 기사들에 보도되었지만, 지면상 짧게 요약되어 아쉬웠다. 여기에 기자 간담회에서 나왔던 말들, 그리고 그와 따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옮겨 둔다. 이는 회사 후배 편집자인 신동화 씨가 다시 번역해 소개한 그의 만해문예대상 수상 소감과 함께 잉고 슐체 문학을 다루려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단, 나의 독일어 능력 때문에 전적으로 통역에 의존해야 했기에 메모 과정에서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실망스럽겠지만…베를린장벽 무너질 때 자고 있었죠" (연합뉴스)
잉고 슐체 "문학, 스스로에 대한 반성"…만해대상 독일작가 (뉴시스)
동독 출신 작가 잉고 슐체 “1989년 통독 이후 성장이 새 이데올로기로…” (국민일보 쿠기뉴스)
“옷·돈·음식…통일 뒤 모든게 변했어요 그건 좋다 나쁘다의 차원이 아닙니다” (한겨레)
“베를린 장벽 붕괴 한 달 전 열린 비폭력 시위가 통일의 결정적 순간이자 간디·만해 사상과 연결” (경향신문)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이념 해체… 달라지는 사람들 면밀히 탐색” (서울신문)
잉고 슐체 “통일 이후 이데올로기 자리에 돈이” (헤럴드경제)
"東獨 비폭력 시위, 만해·간디 사상과 같은 뿌리" (조선일보)
아래는 잉고 슐체의 인터뷰 내용과 이후에 나누었던 대화들을 문답 형태로 내가 요약한 것이다. 첫머리의 말은 기자 간담회에서 있었던 잉고 슐체의 모두 발언이다.
이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로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 책이 출판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책의 재탄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자들이 그 일을 하지요. 번역을 통해서 독자들을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다른 시각과 경험을 가진 독자들을 말입니다. 그런 독자가 많을수록 작품은 더욱 풍부하게 됩니다. 제 많은 책들이 한국에서 번역되었고, 그건 이런 의미에서 제게 아주 기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1. 2011년 서울국제문학포럼 때 방한한 이후 다시 방한한 소감은? 또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한 소감은?
자기 문학에 관심이 있는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는 1999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리고 2011년에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정말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 늦게 도착했고, 아직 어떤 인상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생동감 넘치고 친절을 느꼈다. 그래서 앞으로 2~3일이 정말 기대가 된다. 만해는 그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마음에 드는 분이다.
2. 어떤 점이 구체적으로 마음에 드는가?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에는 공적인 책임이 있어야 한다. 만해는 그런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만해는 전쟁에, 억압에, 외세의 압력에 맞서 비폭력으로 싸웠다. 이번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해 만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독일어 자료는 거의 없었지만 영문으로 된 글을 찾아 읽으면서 휼륭한 시인이자 사상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령, 나의 경우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에 대해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항상 그 일에 대해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은 나의 공적인 책임이었다. 『심플 스토리』 등 내 작품이 독일의 통일에 대한 것이 많기에, 사람들이 늘 나한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어 본다. 그런데 그날 나는 자느라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줄 모르고 있었다.(웃음) 그런데 사실 중요한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1월 9일이 아니라 그 한 달 전인 10월 9일이 중요하다. 동독 수립 40주년 기념일이 지난 지 이틀 후인 그날,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거기에 폭력이 없었다. 만약 그날 폭력이 작용했다면 민중들은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폭력으로는 이기지 못한다는 우리의 비폭력 노선은 한국의 만해 한용운과 인도의 간디까지 거슬러 가는 전통이다. 그때는 만해를 알지 못했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위대한 시인이자 훌륭한 사상가로서 만해를 존경한다.
3. 통일 이전과 이후에 작가로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보자면, 1989년에 나는 작가가 아니었다. 나는 1995년에야 비로소 작가로 데뷔했으니까. 물론 동독 시절이 계속되었어도 나는 결국 작가가 되었겠지만, 아마도 상당히 다른 것을 쓰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통일은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1992년부터 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 머물렀다. 독일 바깥에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통일을 둘러싼 독일의 상황이 객관적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가가 된 것이다. 어쨌든 독일 통일을 전후해서 작가의 사회적 영향력이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냉전 체제가 갑자기 붕괴하고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아니게 되고, 작가들의 관심사도 갑자기 이념에서 책이 얼마나 팔리느냐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비정치화가 중요해진 것이다. 1989년 이후에는 작가에게 중요한 문제들이 더 이상 ‘공적으로’ 토론되지 않아도 되었다.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강요받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대신 갑자기 성장과 민영화, 즉 돈(경제)이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4. 통일 이전에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다면 통일 이후에는 돈이 지배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이제 작가는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
1989년 이전에는 말이 문제였는데, 그 이후에는 숫자가 중요해졌다. 통일이 되기 전에 사람들은 서기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통일 이후에는 모두가 총리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얘기할 수 있는데, 자신의 직속 상관인 사장에 대해서만은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돈만이 중요해진 것이다. 통일 이전에 작가가 되었다면 아마 이데올로기와 싸웠겠지만 나는 지금도 이데올로기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말이다. 자유의 관점에서,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 결정하는 동시에 모두가 어떤 사안에 대해 함께 논의해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일법은 로마법의 전통을 따르는데, 자산 계급의 재산을 보호하는 데에는 강하지만 인간의 노동력을 보호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따라서 통일이 모든 면에서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가령, 고용 문제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은 부정적이다. 통일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종속관계가 새로운 종속관계로 변화한 것이다. 돈이라는 종속관계로. 나는 요즈음 그런 상황에 대해 싸운다. 『아담과 에블린』이나 『새로운 인생』 등의 작품은 이를 그려낸 것이다. 『아담과 에블린』에서 통일 이전에 성공한 재단사였던 아담이 통일 후 제대로 된 일자리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그 한 예이다.
5. 동독 출신 작가로서 통일 이후 스스로 정체성 혼란을 겪지 않았는가?
동독 사람들에게 1989년은 모든 것의 마지막이었다. 음식도, 옷도, 화폐도, 거리 이름도 변했고, 심지어 공기와 사랑마저도 모조리 변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렇게 변화된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변해 가는지를 보는 것이다. 서독 사람들은 통일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일상은 계속 이어졌다. 동독 사람들에게 새로운 출발이었던 것이 서독 사람들한테는 일상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독일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말하는 사람이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두 언어 사이의 차이를 보듯이, 작가로서 나는 한 체제를 경험하다 다른 체제를 겪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 같다.
6. 통일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통일에 관심이 있는가?
물론 나 역시 항상 통일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늘 그 이야기를 쓰는 것도 아니다. 작가들은 사랑이나 죽음을 자기가 경험한 방식으로 쓰며, 문학이란 특정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내가 반드시 통일에 대해서 써야겠다는 책임감은 없다. 작가는 누구나 자기 앞의 현실에 대해 쓰는데, 나의 현실은 통일이다. 내가 서독 작가였다면, 평범한 다른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나에게 굉장히 큰 문제다. 통일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통일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도. 넬슨 만델라의 전기를 보면, 독일 통일이 벌어졌을 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통일은 인류 모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소련도, 중국도, 인도도 변했다.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쓰든지 간에, 그 안에 아마도 통일이 있을 것이다.
7. 『핸드폰』이라는 소설도 썼는데,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나는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 그 이야기를 썼다. 그때는 핸드폰이 보편화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핸드폰은 기술의 상징이고, 아마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인간의 정체성을 파괴한다. 기술은 인간 자체를 변화시킨다. 보행자와 자동차 운전자는 보는 것이 다르지 않는가.
8. 한국의 분단 상황은 독일보다 심각하다. 통일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한국인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북한은 통일 전 동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상황이다. 통일 전 동독 사람들은 이미 200만 명이나 서독 지역을 여행했다. 서독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도 언제든지 보거나 들을 수 있었다. 경제 상황도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장벽이 평화적으로 무너진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가 하는 생각도 든다. 통일이 사실은 통일이 아니라 ‘편입’이었으니까. 편입이 동서독 사람들 모두에게 좋지만은 않았다. 이런 점을 생각해야 한다. 작가로서 그런 거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어렵지만, 남북한의 경우에는 지금 독일이 통일될 때 작용했던 내외적인 힘이 부족하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을 너무 빨리 서두르는 것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 물론 내 제안이 그다지 적절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통일을 생각한다면, 북한 주민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격차를 줄이기 위한 물질적 도움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의 상황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북한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남한 체제 자체에 대해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 반성할 부분이 없는지 성찰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9. 작가로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문학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이며, 자신의 삶을 어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려내는 것이다. 전통적 스토리가 아니라 나만의 스타일을 창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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