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소설집 『밤의 첼로』(민음사, 2013)의 출판을 기념하는 조촐한 술자리가 지난 목요일 밤에 있었다. 해설을 써 준 문학평론가 김미현 선배를 비롯해서 시인 함성호, 정끝별 선배 등이 서울 강남 신사동 회사 근처에 있는 해남집에 모여서 조촐하게 책을 기념했다. 회사의 한국문학 편집자인 김소연, 박혜진 두 사람도 참석했다.
저녁 식사하러 가기 전에 사무실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이응준, 나, 김소연, 정끝별, 김미현이다.
한국문학사에서 아주 보기 드문 형이상학적 관념 미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응준의 중단편들은, 이승우와 더불어, 한국어의 넓이와 깊이에 고유한 무늬를 점차 더해 가고 있다.
『밤의 첼로』에 실린 여섯 편의 작품들은 한국인에게 아주 낯선 영토인 신 또는 종교와 죽음의 쌍관성을 탐구하는 정면 대결을 통해 한국어에, 그러니까 한국인에게 신성(神性)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어는 아직 이런 관념을 다루는 무기로서는 익숙지 않기에, 이응준의 소설은 한없이 신중하고 더디게 사건들을 끌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 소설집 곳곳에서 우리는 신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데,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에서 몽골의 샤먼에 이르기까지 그 넓이는 광활하고 그 깊이는 심연에 다다를 정도로 깊디깊다. 작가 이응준은 '신과의 접촉'이라는 오직 '한 줌의 도덕'을 쥐고서 살인, 자살, 불륜, 이주 노동자 등 사회의 여러 충격적 문제들을 하나로 파고들어 간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소설들이 하이퍼텍스트처럼 상호 참조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운명의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한 줄 실에 하나로 꿰인 구슬들처럼,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은 '신 앞의 존재'로서 평등하게, 서로를 호출한다.
작가가 오래전에 내게 밝혔고, 담당 편집자가 보도자료에 쓴 것처럼, “「물고기 그림자」에 등장하는 무명 여배우 은희와 맹인 수학 교사 목남은 「버드나무군락지」에서 고재만이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싶어 하는 옛 애인과 그녀의 새 애인이다. 「유서를 쓰는 즐거움」에서 수한의 조카 보영이 병원에서 알게 된 Y라는 화가는 「버드나무군락지」에 다시 등장하며, 「낯선 감정의 연습」에서는 자화상만 그리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Y가 보영에게 이야기해 주는 군대 있을 때의 이단(異端) 신병이 바로 「버드나무군락지」의 안중각이다. 「낯선 감정의 연습」에서 ‘나’(이예훈)와 사귀었던 욱경의 사막에 사는 물고기 이야기는 「버드나무군락지」에서 그대로 반복되며, 「밤의 첼로」에서 병운이 그레고르 수목원에서 기르던 늑대가 홀연히 사라진 곳이 바로 ‘버드나무군락지’이다. 「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에 등장하는 지리산 펜션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버드나무군락지」에서는 신문 기사로 소개되기도 하고, 여주인공 한나가 그 펜션에서 만났던 인도 혼혈 소녀가 바로 「유서를 쓰는 즐거움」의 보영이기도 하다.”
어떤 편집증 없이 여러 소설을 건너뛰면서 이런 벽화를 그려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응준의 오랜 편집증이 늘 눈동자에 신의 얼굴이 떠 있는 자들, 항상 가슴속에 신의 목소리가 울리는 자들이 겪는 혹독한 밤, 내면의 강추위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인간은 불행하다. 불행한 인간만이 집요해질 수 있다. 나는 그게 삶의 방식이 된 작가를 늘, 정말로 안타까워했다. 책의 표지보다 훨씬 깊은 어둠. 그러나 그런 어둠만이 아마도 이런 문장을 낳을 수 있으리라. 읽다 보면 이가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누구에게나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이 꼭 한 번은 찾아오고 그러면 그는 홀로 눈보라 치는 광야에서 뜨거운 무쇠 난로를 끌어안듯이 신의 이름을 부른다. 신은 기쁨이 아니다. 신은 슬픔도 아니다. 그저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부르는 조용한 노래일 뿐. 가장 절망스러운 밤의 밑바닥에서 신의 얼굴을 보고자 기도하는 인간은 신이 연주하는 첼로 소리를 듣게 된다. 단 한 번은, 꼭 한 번은 듣게 된다. 신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아름다운 저 첼로 소리를.
어쨌든 조촐했지만 출판 기념회는 흥겹고 풍요로웠다. 문어숙회, 낙지 초무침, 병어 등 해남집의 정통 전라도 음식이 착착 혀에 감겨 들었다. 2차는 근처 선술집 ‘완득이’에서 자정 무렵까지. 출판 기념회에서 읽었던 간략한 기념사를 여기에 적어 둔다.
첼로란 무엇인가.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갑자기 이런 물음 앞에 서 버렸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다시, 꼼꼼하게 읽으면서
저는 표지의 검은색만큼이나 어둡고 깊은 소리들이
내면에서 스르릉 스르릉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습니다.
신의 얼굴을 본 자는 그 자리에서 불타 버립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쓴 사람은 우리에게 신의 얼굴을 보고서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으라는 저주를 선고합니다.
보기를 듣기로 바꾸는, 신의 모습을 신의 소리로 변화시키는
기이한 마법을, 여기, 우리한테 살포합니다.
신의 영역이 우리 안에서 은밀하게 소리 내는 것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하는,
눈을 감아도 내면에서 끈질기게 소리가 울리도록 하는,
영구적인 자기 미학화,
그러니까 자신을 신의 소리를 내는 악기로 단련해 가는 기술을
작가는 우리에게 환기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응준이 그 소리를 좇아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느릅나무 아래에서부터 그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거죠.
편집자로서, 문학의 동료로서
저는 영원히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작가의 극단적인 고통을 보아 왔습니다.
한편으로 이 고통이 그만 멈추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 고통이 빚어내는 소리에 매혹되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유혹해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고통이 빚어낸 아름다운 첼로 하나를 앞에 두었습니다.
이 첼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많은 밤을 새웠을 작가를 비롯하여,
편집자, 디자이너,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글을 써 주신 김미현 선생께,
더 나아가 작가의 숭고에 술 한 잔을,
그리고 첼로 자체에 술 한 잔을 올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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