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회사 워크숍이 있었다. 상반기를 결산하는 자리였는데, 무라카미 하루키 신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때문에 무려 한 달이나 늦어졌다. 워크숍 발표 자료 중 상반기 출판계에 나타난 몇몇 현상에 대한 정리 분석은 따로 기회를 마련해 포스팅할 생각이다.
어쨌든 이어진 술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오늘은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했다. 그래서인지 본래 예정했던 만큼의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괜히 마음이 울적했다. 더 금욕해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허약 체질로 늘 고생하는 영혼의 건강마저 끝내 망쳐질 게 틀림없다.
점심에는 외국어대 일본문학과 최재철 교수님과 보리굴비로 식사를 하면서 예전에 출판했던 『일본 문학의 이해』 개정판 작업 이야기를 했다. 일본 문학에 대한 좋은 개론서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 책은 소세키에서 하루키에 이르는 일본 현대 문학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일지 선생과 나란히. 사진을 찍어 준 홍보기획부 직원 김태선을 하일지 선생의 동덕여대 문창과 제자다.
두 시쯤 갑자기 하일지 선생이 새로운 장편 소설을 일차 탈고한 후 찾아오셔서 같이 담소를 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데, 하일지 선생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선생한테는 소설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고 훌륭한 식견이 있다.
요즈음 선생의 문학은 세 번째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경마장 가는 길』로부터 시작해서 극한의 리얼리즘으로 1990년대 한국문학을 충격에 빠뜨린 일련의 작품들인 ‘경마장 시리즈’ 다섯 권, 화자의 개입을 극도로 억제하는 새로운 서술 방식을 도입해 작가가 화자의 이름을 빌려 소설에 개입해 떠벌거리는 흔한 한국소설들을 넘어서고자 했던 ‘카메라 아이(Camera's Eye)’ 시절 다섯 권(그중에는 『진술』과 『우주피스 공화국』 등이 포함되어 있다.)을 지난 후, 선생의 새로운 관심은 ‘믿을 수 없는 허풍쟁이 화자’에 놓여 있다고 한다.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에서와 같이, 화자가 소설 내용에 깊숙이 개입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음으로써 오히려 작가와 화자의 불일치를 강렬하게 환기시키는 소설.
하일지 선생에 따르면, 현대 소설은 리얼리즘의 충격에서 어떻게 잘 탈출할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놓여 있다. 현실을 단순하게 재현하거나 작가가 소설에 개입해서 자기 사상이나 감정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낡은 예술에 속한다. 선생의 소설은 화자가, 더 나아가서는 작가가 작품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카메라 렌즈처럼 사건의 추이를 따라가 그대로 보여 주기만 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하일지 선생 특유의 이런 화법은 아주 세련된 외피를 선생의 문학에 입혔는데, 이는 선생의 솔직한 결기와 맞물려서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문단에서 이해와 몰이해 사이의 격렬한 논쟁의 빌미가 되곤 했다.
그런데 하일지 선생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소설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지난번에 출간한 『손님』에서 시작되고, 《세계의 문학》에 발표된 단편 「승천」에서 본격적으로 파고든 또 다른 세계, 즉 허풍쟁이 화자 시리즈이다. 기존 선생의 소설과 달리, 그리고 다른 많은 한국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들에서 화자는 극도로 많은 말을 쏟아낸다. 화자가 마구 떠들어 대는데, 진지하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만 자꾸 늘어놓는, 그래서 도저히 작가를 떠올리지 못하게 하는 소설들. 그러나 그 수다쟁이 화자가 텍스트 내부에서 황당한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내적 필연성, 논리적 이유를 가지고 있는 소설들. 가령, 정신병자라든지 꿈 많은 어린아이라든지. 이 소설들이 잘 완성된다면 아마 한국문학에 특이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품은 전혀 보지 못했으니까.
이야기 말미에 하일지 선생은 “현재까지 2만 매 정도 글을 썼는데, 죽을 때까지 1만 매 정도 더 써서 총 3만 매를 쓰는게 꿈”이라고 했다. 벌써 천하의 하일지 선생도 환갑이다. 죽음을 자연스레 입에 올리는 연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신선하다. 카멜레온처럼 매번 옷을 갈아입는다. 환갑 가까운 나이에 이럴 수 있는 한국 작가는 정말 극히 드물다. 그래서 선생의 작품을 지키는 것은 한국 문학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문학은 그에게 항생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은의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 한 컷. 오른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회사의 미녀 편집자 김소연과 시인 김언, 오은, 송기영.
저녁 식사는 시인 송기영하고 간단히 했다. 몸이 좋지 않은 데다 할 일도 있어서 술 한 잔 못했다. 《세계의 문학》 신인으로 나온 시인들은 어쩐지 예쁜 동생들 같다. 잡지 같은 데에서 김지녀, 송기영, 김상혁, 심지아, 안웅선, 성동혁, 안미린, 강지혜, 최지인 등의 시를 보면 괜히 한 번 더 읽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틀림없이 안으로 굽은 팔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 송기영과 심지아는 만나지 못한 적이 꽤 되어서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 송기영이 시집 한 권 분량의 시를 묶어서 가져온 김에 회사에서 휴가를 받았다면서 직접 만나러 온 것이다. 진심으로 반가웠다. 생활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문학을 버리지 않고, 챙겨 나가는 기영의 분투를 나는 언제까지고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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