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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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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철학, 개발과 착취에서 경이와 생명으로 “끝없이 펼쳐진 것처럼 보이는 바다 앞에서 우리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독일의 철학자 군터 슐츠가 『바다의 철학』(김희상 옮김, 이유출판, 2020)에서 묻는다. 바다는 인간을 때로는 매혹하고, 때로는 위협한다. 모험가의 가슴에 미지의 세계를 향한 무한한 상상을 부풀리고, 항해자의 눈앞에 운명의 단두대를 세워 잔혹한 좌절을 불러온다. 다리 달린 육상 동물인 인간은 바다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는 동시에, 몸을 단련해 헤엄치고 배를 만들어 항해함으로써 자유를 이룩한다. 헤겔을 빌려 말하자면, 주어진 자연을 넘어서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해 가는 것은 인류의 역사이고 정신의 운동이다. 바다를 생각하는 것은 곧 인간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바다가 일으킨 생각의 역사, 즉 ‘바다의 철학’을 들여..
황혼의 출판과 대낮의 출판 (경향신문) 대안연구공동체의 ‘인문학, 삶을 말하다’ 시리즈 및 현실문화연구의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에 대해서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가 기사를 썼습니다. 제 의견이 담긴 부분이 있어서 아래에 전제합니다. ‘대낮의 출판’에 대해서는 따로 의견을 밝힌 바 있으므로, 부연하지는 않겠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책이 황혼의 형식을 넘어 대낮의 형식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늘날 독자는 사태가 정리된 이후의 사유가 아니라, 더 빠른 정보와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처럼 이론적인 책과 『영구평화론』처럼 현실 문제에 천착하는 책을 모두 썼다”며 “현대의 책도 사유의 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두꺼운 책, 짧은 시기 현장의 상황에 대한 사유를 담은 책으로 이원화될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자연과 인간』(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2013)을 읽다 1내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미국의 콜롬비아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의 영문판이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서문이 붙은 이 책을 읽고 나는 적잖은 흥분을 느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내 문학적 스승 중 한 분인 김윤식 교수의 연구를 지탱하는 이론적 기둥 하나를 보았다는 점이고(일본으로만 한정하면 고바야시 히데오에서 에토 준으로, 에토 준에서 가라타니 고진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김윤식의 『내가 읽고 만난 일본』(그린비, 2012)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다른 하나는 그의 논의가 날로 지지부진해져 가고 있는 한국문학 연구의 한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오로지 이 감각에만 의존해 나는 1970년대 이후 오랫동안 끊어졌던 일본 지성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