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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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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대중심리 며칠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가 열렸다. 법원이 ‘허위사실 유포자’로 판결한 극우주의자 지만원 씨가 연설을 했다. 이미 귀를 씻었으니 그 말을 입에 담지 않겠다. 국회가 세금으로 허위사실을 들어주고 주장하는 공간인가, 하는 처참한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공당이라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가세한 점이다. 이종명 의원은 “폭동이라 했던 5·18이 정치세력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김순례 의원은 “종북 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했다.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계엄군의 무차별 진압에 시민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일본군이 난징에서 중국인을 학살한 것..
복종하는 신체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 새해 벽두에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김현정 옮김, 더숲, 2018)를 읽었다. 이 책은 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로서 살지 못하고, 권위에 굴복해 자신을 상실하고, 나아가 타자를 공격하는 데까지 이르는가를 심리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고민했던 ‘악의 평범성’ 문제, 즉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나치의 하수인이 되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가 하는 문제를 잊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인간, 주체로서 행동하고 약자와 공감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수십 년 동안 여러 사람이 과제를 이어받으면서 끈질기게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정신의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우리 문화는 “근본적으로 복종을 권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중앙선데이》에 4주에 한 번씩 문학 에세이를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대규모 몰락과 전락의 시절을 맞이해서 ‘리어왕’ 주제를 변주해 보았습니다. 삶이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전락의 고통 없이 어떤 인간도 자신의 참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 밑바닥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만이 삶을 올바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권력의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들이 줄줄이 떨어지는 계절에, 문득문득 떠오르던 것들을 가볍게 적어 보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리어는 행복했다. 브리튼 왕국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였다.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고, 아름다운 딸도 셋이나 있었다. 왕국을 세 딸에게 나누어준 후, 딸들 집을 교대로 돌아다니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작정이었다.그러나 리어의 계획은..
가라타니 고진의 『자연과 인간』(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2013)을 읽다 1내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미국의 콜롬비아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의 영문판이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서문이 붙은 이 책을 읽고 나는 적잖은 흥분을 느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내 문학적 스승 중 한 분인 김윤식 교수의 연구를 지탱하는 이론적 기둥 하나를 보았다는 점이고(일본으로만 한정하면 고바야시 히데오에서 에토 준으로, 에토 준에서 가라타니 고진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김윤식의 『내가 읽고 만난 일본』(그린비, 2012)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다른 하나는 그의 논의가 날로 지지부진해져 가고 있는 한국문학 연구의 한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오로지 이 감각에만 의존해 나는 1970년대 이후 오랫동안 끊어졌던 일본 지성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