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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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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그래픽노블 시리즈 - 진실의 그래픽 아민더 달리왈의 『우먼월드』(롤러코스트, 2020)는 ‘남자 없는 세계’라는 설정을 통해 현재의 가부장제 세상을 다시 상상한다. 유전 이상이 생겨 남자들이 요절하거나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미래 세계가 배경이다. 여기에 엄청난 자연 재해까지 겹쳐서 인류 문명 전체가 파괴된 상황. 이런 세계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가를 ‘비욘세의 허벅지 마을’이라는 작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조명한다. 법도, 경찰도, 군대도 없는 세상에서 남아 있는 정자의 보존과 관리 등 인류 존속 문제를 위해 애쓰는 한편, 사랑의 열망과 불안 등에 시달리면서 일상의 작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고민하고 협동하는 여성들 이야기가 무척 감동적이다. 무릉도원 같다. 인스타그램에 연재되면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페미사이드, 여자라서 살해되는 여자들 최근 스물다섯 살 황예진 씨가 남자친구의 폭력 행위로 사망했다. 억울한 죽음이었다. 법원은 가해 남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경찰은 살인죄 대신 상해치사죄를 적용하려 했다. 이건 현대 국가에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흔한 사법적 처리 방식의 하나다. 유족들은 현장 폐쇄회로(CCTV) 화면을 공개하고, 청와대에 청원을 올려 가해자에 대한 강한 처벌과 함께 ‘데이트 폭력 가중처벌법’ 제정을 호소 중이다. 그런데 황예진 씨는 예외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남편, 애인 등 친밀한 사이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97명, 간신히 살아남은 여성이 131명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에서 최소로 잡은 숫자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도 있을 테니, 한국에서 여성 살해 관련 사건은 거..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서른 해 전이다. 먼저 영화를 접했고, 다음에 소설을 읽었다. SF 소설을 읽기는 하지만 일부러 찾아 읽지 않는 나 같은 이들한테 흔한 경로다. 국내 개봉 영화 제목은 ‘핸드메이드’. 처음에는 handmade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handmaid였다. ‘시녀’라는 뜻이다. 지금은 영화를 보지 않지만, 당시엔 영화광이었다. 영화 의 폴커 슐렌도르프가 감독을, 노벨문학상을 나중에 수상한 해럴드 핀터가 각색을,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았다. 안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원작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이건 습관이다. 영화를 보고 좋았는데, 원작이 있으면 거의 찾아 읽는다. (솔직히 반대 방향은 잘 안 그런다. 주로 실망하니까.) 작가 이름은 마거릿 애트우드. 흔..
책이 말한다, 이 부정의한 세상에 - 마흔 권의 책으로 말하는 2010년대 책 의 결산 2019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또한 달리는 말에서 갈라진 벽의 틈새를 보듯, 2010년대도 훌쩍 지나갔다. 지난 10년 책의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2009년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티브 잡스’가 열어젖힌 ‘제4차 산업혁명’의 봇물에 휩쓸려 그사이 삶의 전 영역이 ‘좋아요’와 ‘하트’ 놀이에 중독됐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우리는 어느새 정보와 상호작용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됐다. 머리 한쪽이 늘 멍한 산만함에서 우리 정신을 지켜 주는 것은 역시 호흡 긴 서사인 책밖에 없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다시, 책으로’ 돌아와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책의 대지에 핀 꽃들은 자주 불(不)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먼저,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유의 어둠 속에 찬란한 빛..
2016년 출판계 키워드 요약 연말이면 한 해 출판계를 정리하는 글을 여기저기에 쓰게 된다. 올해도 부지런히 책을 읽고 출판을 들여다보면서 보냈지만,이런 글을 쓸 때마다 몇 마디 말로 책의 풍요를 압축할 수 없어서 상당한 고민을 하게 된다. 출판 전문지인 《기획회의》는 해마다 연말이면 출판계 키워드 30을 뽑아서 한 해의 출판을 정리한다.이 특집이 실린 《기획회의》 429호 여는 글에서 이를 요약해 보았다. 또다시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솟구침과 곤두박질의 롤러코스터에 적절히 올라타서 온갖 묘기를 부리는 일은 출판 편집자의 운명과 같지만, 올해는 유난히 일이 많고 말 또한 무성했다. 초연결사회에 걸맞게 순식간에 화제가 응집하고 소멸하는 ‘하이콘텍스트’ 시대가 열리면서 이에 따른 출판의 대응도 기민해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앎에..
《리터》 2호를 읽다 1《리터》 2호를 읽다. 특집은 ‘페미니즘’이다. 격월간이라는 발행 간격을 의식해서 움직이는 느낌. 첫 호에서도 그랬지만 이미 화제가 된 이슈를 통해 시대에 응전하는,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사후적 아방가르드’의 편집론. 특집에 실린 글이 사태의 정리에 무게를 주로 담은 ‘리뷰’에 가까운 건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닐까. 소설가 김혜진이 쓴 김명순 약전이 무척 흥미로웠다. 한국문학을 공부했지만, 나는 김명순의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어쩌면 이 사실이 한국 여성의 근대사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따로 김명순의 소설과 수필을 챙겨서 읽어볼 결심을 했다. 2문학상에 대한 장강명의 산문을 아주 흥미롭게 읽는 중. 거침없이 말하는 법을 익힌 사람은 언제나 사랑스러운 것이니까. 3이응준의 문장에는 숨 막히는 데가 있..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김명남 옮김, 창비, 2016)를 읽다 연휴에 틈틈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김명남 옮김, 창비, 2016)를 읽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이 뛰어난 영어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아프리카적 현실 속에서 인간적 삶의 위엄을 이룩하려는 인물들을 작품으로 그려왔다. 이 책은 지나치게 소품이고, 페미니즘이라는 상식적 가치를 다루지만 저자 특유의 이야기 솜씨가 읽기에 리듬과 활기를 부여한다. 스무 살이 된 딸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하려고 한다.그러나 이 책을 이야기할 때에는 아디치에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아직 우리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빠짐없이 번역되었기에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처음 접할 때부터 그 작품들이 마음에 들었고, 한국에 소개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