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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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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서평]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_ 로버트 라이시, 『자본주의를 구하라』(안기순 옮김, 김영사, 2016) 미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경제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보면 당연하다. 정치는 나와는 별 관련 없이 멀어 보이고, 먹고사는 문제는 피부로 와 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는 지겨워하지만, 사실 정치가 무언가를 해결해 줄 수 없을 듯한 허무에 빠져 있지만, 경제를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을 퍼뜨리는 것이야말로, 부를 독점한 소수가 정말로 바라는 일이다. 로버트 라이시는 경제란 사회 바깥에 있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서만 비로소 그 사회적 실체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소수가 부를 독점할 뿐만 아니라, 대항적 세력의 힘을 약화시킴으로써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부를 독점하기 쉽도록 경제적 규칙을 끝없이 세부적으로 고쳐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화일보 서평] 美 정의의 여신, 돈에 눈멀었나? _맥 타이비의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따르면, 정의(正義)란 기본적으로 “사물의 공정한 분배”를 뜻한다. 정의란 언제나 “분배”를 따지는 실천이고, 따라서 그 한 갈래인 사법 정의란 “마땅히 벌해야 할 이들에게 죄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다.(이마미치 도모노부, 『단테 신곡 강의』) 이것이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는 눈을 가린 채, 한 손에 저울을, 한 손에 칼을 든 이유일 것이다. 죄를 저지른 자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신분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공정함과 엄정함을 무기로 법을 집행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뜻이다.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는 오늘날 미국에서 ‘정의의 여신’이 어떻게 돈 앞에서 눈을 뜨게 되었는가를 그 뿌리까지 파헤친 르포르타주 논픽션이다. ‘빈부 격차 시대의 미국의 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