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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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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 학이(學而) 편에 대하여 1 학이(學而) 편에 대하여 『논어』는 한 편 한 편이 체계적으로 서술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을 끌어 모은 책이고, 이를 지금처럼 스무 편으로 편집한 것도 아주 후대의 일입니다. 게다가 각 편에 실린 글을 숫자도 일정하지 않고 내용도 일관성이 없습니다. 편명 역시 맨 앞에 나오는 두세 글자를 따서 제목으로 삼았을 뿐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학이(學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고 해서, 이 편에 공부에 대한 글이 모여 있는 건 아닙니다. 공부에 대한 글은 여섯 편뿐이고, 나머지는 공부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스스로 “배우기를 좋아한다(好學)”고 했습니다. 『논어』에 이 말은 열여섯 번이나 나올 정도입니다. 『논어』가 「학이」 편으로 시작한 것은 아마 이 때문일 듯도 합..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단단혜무타기(斷斷兮無他技, 한결같이 정성스러울 뿐 다른 재주는 없구나) 「진서(秦誓)」에 이르기를, “한 사람 신하가 있어서 한결같이 정성스러울 뿐 다른 재주는 없으나, 그 마음이 너그러워서 [남을] 포용함이 있는 것 같다. 남이 재주가 있으면 자신한테 그것이 있는 것처럼 여기고, 남이 뛰어나고 총명하면 그 마음으로까지 좋아하지 그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능히 그들을 포용할 수 있으니 이로써 우리 자손과 백성을 보전할 수 있으니 또한 이로움이 있기를 바랄 수 있겠구나! [다시 한 신하가 있어서] 남이 재주가 있으면 시샘하고 질투하여 그를 미워하고, 남이 뛰어나고 총명하면 이를 어그러뜨리고 [임금과] 통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사람은 포용할 수 없으니 이로써 우리 자손과 백성을 보전할 수 없으니 도한 위태롭구나!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 無..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유명불우상(惟命不于常, 천명은 항상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강고(康誥)」에 이르기를, “무릇 천명이란 항상 머무르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했다. 이는 선하면 이를 얻고 선하지 못하면 이를 잃음을 말한다. 「초서(楚書)」에 이르기를, “초나라는 보물로 삼는 것이 없고, 오직 선함을 보물로 삼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구범(舅犯)이 이르기를, “망명한 사람은 보물로 삼는 것이 없고, 친인(親人)을 사랑하는 것을 보물로 삼습니다.”라고 했다. 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爲寶, 惟善以爲寶. 舅犯曰, 亡人無以爲寶, 仁親以爲寶. 여기에서는 전고(典故)를 세 편 들어 왜 재물을 얻는 것이 근본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것이 근본이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로 든 예는 주공(周公)이 막내인 강숙(康叔)을 봉하여 보내면서 충고한 「강고」에..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의기가인(宜其家人, 그 집안 사람들과 잘 지내리) 『시경』에 이르기를, “복숭아는 탐스럽고, 그 잎은 무성하네. 이 딸이 시집가니, 그 집안사람들과 잘 지내리.”라고 했다. 그 집안사람들과 잘 지낸 이후에야 가히 그로써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형 노릇도 잘하고, 아우 노릇도 잘하네.”라고 했다. 형 노릇도 잘하고 아우 노릇도 잘한 이후에야 가히 그로써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그 거둥이 어그러지지 않으니, 이 사방 나라들이 [본받아] 바르게 되리라.”라고 했다. 그 아비 됨과 아들 됨과 형 됨과 아우 됨이 본받을 만한 이후에야 백성들이 그를 본받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소장호신불서이능유제인자(所藏乎身不恕而能喩諸人者) 미지유야(未之有也)(몸에 간직한 바가 서(恕)가 아니면서 능히 남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있지 않..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어짊[仁]으로써 이끌자 백성들이 (기꺼이) 그 가르침을 따랐다. 걸임금과 주임금이 천하를 포악함으로써 이끌자 백성들이 (마지못해) 그 가르침을 따랐다. 그 명령하는 바와 그 좋아하는 바가 반대여서는 백성들은 따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군자는 자기에게 (어짊이) 있은 이후에야 비로소 남한테서도 (그 어짊을) 구하고, 자기에게서 (포악을) 없앤 이후에야 비로소 남한테 (그 포악을) 아니라고 한다. 몸에 간직한 바가 서(恕)가 아니면서 능히 남을 깨우친 사람은 아직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堯舜帥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帥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 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인막지기자지악, 막지기묘지석(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사람은 그 자식의 잘못을 알지 못하며, 그 싹의 자람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그 자식의 잘못을 알지 못하며, 그 싹의 자람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일컬어서 몸을 닦지 않으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 身不修, 不可以齊其家. 어제에 이어서 전(傳) 8장의 나머지 문장을 읽겠습니다. 오늘은 당시에 널리 알려진 속담을 들어서,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대학』의 저자는 집안을 바로잡음으로써 천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의 몸을 맑게 닦음으로써 집안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몸을 맑게 닦는 것은 단지 집안을 다스리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앎을 끝까지 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도 그 안에는 분명히 들어 ..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심부재언(心不在焉,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이른바 몸을 닦는 것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은, 몸에 분하고 성냄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요, 무섭고 두려워함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요, 좋아하고 즐김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요, 근심하고 걱정함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를 일컬어 몸을 닦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놓여 있다고 한 것이다. 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전(傳) 7장은 8조목 중에서 ‘정심(正心)’을 풀이..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심광체반(心廣體胖, 마음이 넓어지면 몸은 편안히 펴진다) 증자(曾子)가 말했다. “열 눈이 바라보는 바요, 열 손이 가리키는 바니, 그 엄격함이여!” 부(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면 몸은 편안히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다.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성의(誠意)’를 해설하는 전(傳) 6장의 마지막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오늘이 6장의 마지막입니다. 고본 『대학』에서는 이 장의 글들이 모두 앞에서 공부한 “『시경』에 이르기를, ‘저 기수(淇水)의 물굽이를 쳐다보니, 조개풀[菉竹]이 아름답고 아름답구나.’[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의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희가 이를 나누어서 여기에 가져다두고 ‘성의’를 풀이한 것으로 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