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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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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물건을 만드는 일은 영혼을 단련하는 것과 같다 누구나 자기 일을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배울 수 있다. 집은 짓든, 가구를 만들든, 음식을 요리하든, 경지에 오른 장인은 모두 깊은 영성의 탐구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손길이 닿으면, 일상의 제품은 영혼의 작품이 된다. 물건 만드는 일은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요, 영적 깨달음을 누적하는 일이다. 좋은 물건을 만나면 경건하고 거룩한 마음이 먼저 일어서는 이유다. 『울림』(니케북스, 2022)에서 독일의 바이올린 장인 마틴 슐레스케는 말한다. “악기를 만들다 보면 특별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작업실에서 경험하는 거룩한 순간. 그 순간에 나는 삶의 외적·내적 일들을 새롭게, 다르게 지각한다. 단순히 습득된 지식을 넘어서는 경험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일상에도 이같이 계시의 순간들이 주어질 거라고 확신한다. 우..
한 역사학자의 죽음 서양사학자 이영석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대중한테 이름 높은 ‘미디어 인문학자’도, 연구는 뒷전이고 이른바 ‘활동’에 전념하는 참여파도 아니었다. 전공은 영국 사회 경제사. 평생 남의 나라 역사 한 부분을 좁고 깊게 팠다. 관련 학자들 말고 이름이 알려질 까닭은 별로 없었다. 주변 소셜 미디어 쪽 반응은 달랐다. 다른 분야의 많은 지식인들도 크고 작은 인연을 고백하고, 학문적 일생에 존경을 표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책은 읽지 않지만, 페이스북에 실린 글은 읽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면서, 대학을 정년퇴직한 후 페이스북에서 역사 관련 지식과 통찰을 공유한 까닭도 있을 테다. 자기 공부를 정리한 『삶으로서의 역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상을 성찰한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 등은 그 결과였다. 목소리는..
일의 보람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우리는 보통 반복되는 일을 권태롭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세련된 손기술을 익히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어떤 일을 계속 되풀이하더라도 그 작업이 예측을 동반하는 방식으로 흘러갈 때는 일하는 사람을 고무한다. 똑같이 반복적인 작업이라도 반복의 내용은 새로워지고, 변형이 일어나며, 향상될 수 있다. 하지만 작업자가 느끼는 정서적 보람은 반복적인 일을 다시 하는 바로 그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 바로 리듬인 것이다. 생리적으로 리듬을 타며 수축하는 인간의 심장처럼, 숙달된 장인은 그의 손과 눈을 쓸 때 리듬을 탄다. _ 리처드 세넷, 『장인』, 김홍식 옮김(21세기북스, 2021) 중에서 ===== 이렇답니다. 나날이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7] 호학(好學) _ 배우기를 좋아하다 5-28 공자가 말했다.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성스럽고 신의 있는 사람이 거기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이 장에 대하여 주희는 아름다운 자질은 얻기 쉬우나 지극한 도는 듣기 어려우므로, 배움이 지극하면 곧 성인이 될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시골뜨기에 한낱 머무를 뿐이므로 사람은 배움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약용은 이는 공자가 자신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 고귀한 일임을 설명한 뜻이라고 했다. 『논어』 전체에 걸쳐 충(忠)과 신(信)은 군자가 되려는 이들이 반드시 힘써야 하는 덕목으로 칭송된다.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미덥기만 해도 이미 훌륭한 성품이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
밑줄과 반응 2012년 6월 14일(목) 장인 리처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부산 영산대 한성안 교수의 블로그에는 거의 매일 그가 읽은 신문 기사 중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글이 밑줄 친 상태로 올라온다. 오늘 블로그에 올라온 것은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가 쓴 『장인』의 리뷰 글이었다. 리처드 세넷의 책은 예전에 감동적으로 읽었기도 하고, 내 편집자론의(그런 게 있기만 하다면^^)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준 책 중 하나여서 무척 반가웠다. 2010년 스피노자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인 저자 세넷은 50여년 전 자신의 스승 한나 아렌트에게서 이같이 배웠다. 호모 파베르의 판단력이 인류를 문제적 상황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아렌트의 견해에 세넷은 문제를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장인(匠人)의 이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