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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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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거예요 _올리버 색스 1주기 추모글 올리버 색스 1주기에 맞추어 추모글을 하나 썼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대한 글입니다. 왜 저는 올리버 색스의 편집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이 책을 그렇게 재미있게 읽고, 이후로도 많은 책을 챙겨 읽었는데요. 왜 끝끝내 독자로만 남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래에 그 사연(^^)을 옮겨 둡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던 거예요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조석현 옮김, 알마, 2015) 아주 이상한 일이죠. 닿을 수 없는 신비, 손댈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할까요. 일종의 플라토닉 러브, 그러니까 사랑하지만 침대를 같이 쓰고 싶지는 않은 사랑이에요. 읽어서 마음에 닿으면 직접 손으로 문장을 붙잡고, 머리로 형태를 떠올리고, 입으로 동네방네 떠들고, 발로 친구들을..
몽테뉴의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_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을 읽다 (2) 연이틀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안인희 옮김, 유유, 2012)을 읽었다. 아침에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서 지하철에서 어제 읽다 아껴 둔 부분을 마저 끝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츠바이크의 글은 한 위대한 정신에 대한 지극한 공명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소리굽쇠의 한 축이 되어 저자의 삶이나 글과 부딪힐 때마다 울음소리를 낸다. 역사적 인물의 복원이 아니라 ‘위대한 현재’를 발굴하는 광부의 솜씨를 가지고 있다. 기이하고 훌륭하고 본받고 싶은 글이다. 서른여섯 살, 아버지가 죽자 유산을 물려받은 몽테뉴는 비로소 홀로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영지의 경영이 아니었다. 몽테뉴는 세상에서 물러나 성 안에 있는 작은 성인 ‘치타델레(Zitadelle)’에 서재를 꾸미고 그 안에 틀어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