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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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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정치의 절망에서 문학의 희망으로 1830년 프랑스에서 7월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 직후, 서른한 살 청년 발자크는 깊은 고뇌에 사로잡힌다. 발자크 생각에, 가장 확실한 것이 불확실해졌다. 혁명 세력이 진보라 부르는 역사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 흐름이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향해 열린 것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돌아서지도 못하는 양난의 상황에서 발자크는 방황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공포정치,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에 이은 나폴레옹 집권, 혁명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잇따른 전쟁과 1815년 워털루 전투 패전으로 인한 나폴레옹 유배, 루이 18세의 복고 왕정과 특권을 유지하려는 귀족들의 폭정 등.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격동적이고 드라마틱한 ..
자유의 근대를 넘어서 윤리의 근대로 냉전이 끝나고 근대가 전면적으로 개화하며 전 세계가 미국과 프랑스를 본받아 자유를 원리로 하는 국가, 사회, 제도를 만들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 역설적으로 근대가 힘을 잃고 소모되어 스스로를 감히 ‘보편적’이라고 내세울 수 없음이 분명해졌습니다. 1970년대 말에 일어난 이란혁명은 이 상황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 징후였습니다. 중동 지역에 자유를 기본 원리로 삼은 국가가 아니라 ‘이슬람 부흥주의’의 기치를 내건 국가가 등장하면서 중동은 격동의 시대로 빠져들었습니다. (강상중) ======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개인을 내세우고 정치-경제-종교의 분리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경제(돈)가 모든 사회 조직을 지배하는 근대라는 게 마르크스의 뛰어난 통찰이다.레닌이 발명한 소비에트는 국가와 사회를 하나로 묶는 총력..
경제 앞에 정의부터 세우라 ―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까 경제 앞에 정의부터 세우라―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까조너선 B. 화이트, 『애덤 스미스 구하기』(이경식 옮김, 북스토리, 2007) ‘보이지 않는 손’은 또다시 문제를 해결하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레이건과 대처의 정치경제, 즉 “안정화하라–자유화하라–민영화하라”(S-L-P, Stabilize! Liberate! Privatize!)로 집약되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인해 한때 전 세계에서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사회’라는 제어장치를 상실하고 저 홀로 폭주한 끝에, 극소수에게 전 세계의 부가 집중되는 ‘대격차’라는 처참한 현실을 낳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와 더불어 도덕적으로 완벽한 파산을 맞이했다. 그 이후, ..
자기를 성찰하면서 사회를 다시 쓰기 - 2016년 한국 출판시장의 흐름 《시사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2016년 출판시장을 몇 가지 흐름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자기를 성찰하면서 사회를 다시 쓰기2016년 한국 출판시장의 흐름 “18년 동안 사익을 한 번도 추구하지 않았다”는 인간-기계가 통치하는 세상은, 틀림없이 무참하고 무의미하며 불행한 지옥일 것이다. 욕망은 타자로부터, 타자를 통해서 비로소 도래한다. 욕망이란 항상 타자에 대한 욕망이기에,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 온전히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자기 욕망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고 믿는 자는 자기 삶에서 타자를 뿌리째 뽑아 버린 괴물이다. 그런 존재는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자’인 신이거나, 누군가 프로그래밍해 주는 대로 살아가는 꼭두각시 기계일 수밖에 없다. 타자가 보이지 않기에 눈앞에서 어두운 물속으로 가라..
[문화일보 서평]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_ 로버트 라이시, 『자본주의를 구하라』(안기순 옮김, 김영사, 2016) 미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경제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보면 당연하다. 정치는 나와는 별 관련 없이 멀어 보이고, 먹고사는 문제는 피부로 와 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는 지겨워하지만, 사실 정치가 무언가를 해결해 줄 수 없을 듯한 허무에 빠져 있지만, 경제를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을 퍼뜨리는 것이야말로, 부를 독점한 소수가 정말로 바라는 일이다. 로버트 라이시는 경제란 사회 바깥에 있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서만 비로소 그 사회적 실체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소수가 부를 독점할 뿐만 아니라, 대항적 세력의 힘을 약화시킴으로써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부를 독점하기 쉽도록 경제적 규칙을 끝없이 세부적으로 고쳐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화일보 서평] 성장 없는 사회… ‘골목 小商’이 답이다 시골로, 숲으로, 골목으로……. 또, 다른 곳으로……. 그러니까 어디든지!‘어떻게 살 것인가’는 모든 시대의 문제이지만, ‘어떻게 비자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는 우리 시대의 문제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읽든,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든,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든, 다른 어디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 행동거지는 각각 다를지라도 품은 마음과 목표는 단 하나뿐이다. 자본주의를 횡단함으로써 생명의 새로운 규칙을 찾아내기. 고래가 뭍에서 바다로 돌아갔듯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보전을 위한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한 번 더, 조금 더’에서 ‘더 이상은, 이대로는’으로 종의 윤리가 격변하는 중이다.『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에 따르면, 현재 자본주의는 진보의..
생산과 소비의 새로운 윤리를 찾다 낭비 사회를 넘어서 -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민음사 세르주 라투슈의 『낭비 사회를 넘어서』(정기헌 옮김, 민음사, 2014)는 ‘계획적 진부화’라는, 경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려졌으나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품 생산과 소비 양식을 다룬다. 계획적 진부화는 소비를 촉진하고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 제품에 인위적으로 수명을 부여하여 강제로 폐기를 유발하고 재구매를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자동차, 스타킹, 면도날, 전구 등 공산품에 적용된 이 개념은 일회용품의 출현에 따라 상품 전반으로 퍼져 나갔고, 유통기한 개념이 도입되면서 농산물로 확대되었다. 더 나아가 연봉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 등 인간 자체를 일시적으로 고용하고 폐기하는 인간적 진부화에까지 이르게 되었다.현재 우..
박진영의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소명출판, 2013)을 읽다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 박진영 지음/소명출판 오랫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은 대개 번민의 산물이지만 또 여가의 결과이기도 해서, 시절이 작은 겨를조차 앗아 갈 때에는 이곳은 좀처럼 채워지지 못하고 텅 비게 된다. 그사이 이런저런 글도 몇 편 쓰고, 책도 십여 권 읽었지만 마음이 전혀 따르지 못해서 여기에 옮겨 두지 못했다. 입시를 앞둔 아이들 탓에 여행을 떠나기 힘든 긴 연휴를 틈타 서재를 정리한 후에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꾸준한 마음이 계속될지 모르나, 일단 내키는 대로 계속 적어 볼 요량이다. 근대 자본주의와 책의 불멸성과 편집자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는 이라면, 박진영의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소명출판, 2013)을 한 번쯤은 읽어야 할 것이다. 대한제국의 소멸과 일제강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