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별

(3)
온정균(溫庭筠)의 「보살만(菩薩蠻) 4」 보살만(菩薩蠻) 4 푸른 꼬리 금빛 깃털 물수리 한 쌍(翠翹金縷雙鸂鶒), 물결무늬 살짝 이는 봄 연못이 파라네(水紋細起春池碧). 연못가 해당화는(池上海棠梨) 비 갠 후 가지를 붉은 꽃으로 채웠구나(雨晴紅滿枝). 수놓은 저고리로 보조개를 살짝 가리는데(繡衫遮笑靨) 안개처럼 무성한 풀에는 나비가 달라붙었네(烟草粘飛蝶). 청색 창살 밖엔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한데(靑瑣對芳菲) 옥문관 너머 임 소식은 드물기만 하구나(玉關音信稀). ==== 온정균(溫庭筠, 812∼870)은 만당(晩唐)의 시인으로 노래 가사를 잘 지어서 이름이 높았다. 제목의 보살만(菩薩蠻)은 기루에서 주로 불리던 노랫가락의 한 종류이다. 온정균은 이 노랫가락에 맞추어 여러 편 작품을 지었는데, 이 작품은 그중 한 편이다. 봄의 화려한 색채감이 돋..
낯선 사랑, 낯선 결혼, 낯선 이별 - 서유미의 『홀딩, 턴』(위즈덤하우스)를 읽다 “무엇보다도 사랑과 결혼이 겹치는 지점이 불편했다. 영진과 잘 지낼 때도 생활 속에서는 적당한 거리감 확보가 간절했다. 연애할 때는 밀착되는 게 좋았지만 그게 매일 이어지는 건 버거웠다. 지원이 꿈꾸는 건 오래 연애하는 상태에 가까웠다.”어제 오후, 서유미의 『홀딩, 턴』(위즈덤하우스, 2018)을 읽었다. 사랑과 이별의 과정이 아니라 내면을 더듬어 가는 섬세하고 느릿느릿한 이별 이야기다. 지원과 영진이 스윙댄스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하고 사소한 이유로 이혼에 이르는 다섯 해 동안의 삶을 그려 낸다. 둘의 이별은 불행하되 추접하지 않다. 침착하고 산뜻해서 신선하다.두 사람의 사랑은 ‘불행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탄하지만, ‘쿨의 윤리’를 좇아 눈에 띄는, 아무 상처도 없이 갈라선다. 스무 해 전인 19..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최당(崔讜)의 마상기인(馬上寄人, 말 위에서 사람에게 주다) 말 위에서 사람에게 주다 최당(崔讜, 1135~1211) 한 번 이별하고 한 번 만남이 있다면,잠시 헤어지는 것이 또 어찌 상처가 되랴.마음으로 다시 못 볼 걸 알기에,애가 끊어지고 또 끊어지네. 馬上寄人 一別有一見,暫別又何傷.情知不再見,斷腸仍斷腸. 최당은 고려 중기 문인입니다. 관직에 나아갔다 은퇴한 후 친구들과 기로회(耆老會)를 조직해서 시와 술을 즐겼기에 지상선(地上仙)이라 불렸다는 말이 전합니다. 이 시는 이별의 정을 노래한 별시(別詩)입니다. 임을 두고 떠나가는 말 위에서 헤어지는 마음을 담아 남긴 시입니다. 헤어짐의 아픔을 담은 시의 정조가 솔직하면서도 애절해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돌아옴을 아는 이별은 슬퍼도 슬프지 않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별은 상처가 아니라 추억을 남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