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에 겐자부로

(4)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 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것도 주로 사전에 의지해 읽어가면서 제 마음속 혹은 머릿속에, 그러니까 제 언어의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영어나 프랑스어 원서가 메아리쳤습니다. 그것을 일본어로 옮겨놓고자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말 새로운 언어와 만나게 됩니다. 혹은 새로운 문장이 떠오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면서요. 이렇게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적인 것의 왕복을 끊임없이 맛보는 작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체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은 번역을 하게 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소설을 썼습니다. ―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 67쪽 오에 선생의 글은 살짝만 건드려도 소리를 ..
[문화일보 서평] 일본인이여… 몰랐다고 무책임해도 되는가 _ 가토 슈이치의 『양의 노래』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하는 국민은, 스스로 훨씬 자유롭다고 믿었을 때 훨씬 더 자유롭지 못했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존재를 몰랐던 수많은 독일 국민처럼, 군사 목표에 한정된 폭격으로 말미암아 폐허로 변해버린 베트남 마을들의 실정을 까맣게 몰랐던 미국 국민처럼.”난징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대다수 일본 국민은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 그러나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 가토 슈이치는 “황군이 동양의 영원한 평화와 선린우호를 위해 어린아이와 부녀자를 포함한 중국 인민 수만 명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그 학살에 대한 무책임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전에 아마도 분명히 학살자한테 정권을 맡긴 ‘자유의 포기’가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진실은 이처럼 가혹하다. 영혼을 횡..
권력의 말과 문학의 말 말의 정의 -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태욱 옮김/뮤진트리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4)는 오키나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후쿠시마를 문학적 에세이의 형태로 사유한다. 이 세 장소는 “인간의 교만 위에서 성립한 지금의 삶”의 뿌리와 귀결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적 상징이다. 태평양 전쟁 말, 오키나와에서는 강요된 자결이 있었다. 기울어져 가는 전세 속에서 일본군은 도카시키지마 섬 주민에게 ‘집단 자결’을 강요하고, 군대가 건넨 수류탄으로 300명 이상이 자결하고 그러지 못했던 주민들은 한낱 어린아이까지도 가족이 도끼나 낫, 또는 손으로 죽인 사건이 있었다.(오에는 이 사건을 고발해 쓴 『오키나와 노트』 때문에 소송을 당했고, 결국 무혐의로 승소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인생삼독(人生三讀) 인생삼독(人生三讀) 지식정보사회에서 책을 읽어 지혜와 정보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이제 누구에게나 평생의 과업이 됐다. 책은 권력을 쥐려는 소수를 위한 사치품에서 아무한테나 필요하고 흔히 곁에 둘 수 있는 일상의 필수품으로 진화해 왔다. 현대문명의 혁신은 거의 기존 시스템이 기호나 문자와 결합하면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읽는 능력'은 모든 사람이 갖추고 누려야 할 인간의 기본권으로 격상됐다. 그런데 사람은 늘 책을 가까이해야 하지만 특히 인생의 세 시기에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 제 꼴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첫째 시기는 3~6세다. 이 시기에 사람은 부모의 목소리를 통해서 책을 읽기 시작해 혼자 읽기를 즐기기 시작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한마디로 읽기의 걸음마를 떼는 단계이다. 노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