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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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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잇 수다] 짧은 소설, 일시적 바람인가 장르로의 도약인가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최근 문학계 트렌드는 ‘분량의 가벼움’이라 할 만하다. 경장편 소설의 인기에 이어 단편으로 분류할 수도 없는 ‘짧은 소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 소설은 손바닥 소설, 초단편 소설 등으로 불린다.지난해 12월 출간된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은 출간 한 달여 만에 1만 2000부를 인쇄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올렸던 짧은 소설을 모아 펴낸 이 책은 소설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같은달 출간된 양진채 작가의 ‘달로 간 자전거’는 30여편의 짧은 소설을 담은 스마트 소설집이다. 200자 원고지 기준, 10장 내외로 압축돼 문장의 맛을 느끼기 좋고 길이는 짧지만, 서사를 갖춘 소설이라는 평이다. 어떤 것은 시(詩)보다 더..
작은 출판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아침독서신문에서 발행하는 에 실은 서평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들로부터 출판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인데, 이번에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작은 출판사는 어떻게 일하는가니시야마 마사코,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김연한 옮김, 유유, 2017) “잘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책을 만드는 일만이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을 밝혀 줄 겁니다.”이 문장에 자꾸 눈길이 머무른다. 몇 번이고 되돌아와서 읽는데, 마음의 호수에 ‘압도적으로’라는 부사가 울림을 일으킨다. 선명한 결기가 만드는 단호한 아름다움. 아름다움 아래 가로놓인 고통의 온갖 무늬가 눈에 밟혀 차마 책장을 넘길 수 없다. 아카아카샤의 대표 히메노 기미가 한 말이다. 아카아카샤는 일본의 사진 전문 출판사로 그녀가 혼자 운..
출판의 기적은 매일매일 일어난다 ― 미시마 구니히로의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윤희연 옮김, 갈라파고스, 2016)를 읽다 출판의 기적은 매일매일 일어난다― 미시마 구니히로,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윤희연 옮김, 갈라파고스, 2016)를 읽다 편집자의 생명줄은 두 가지다. 하나는 데이터 또는 경험, 또 하나는 영감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데이터는 조사로 만들 수 있고, 경험은 일해서 축적할 수 있지만, 영감이 바닥을 치면 끝이라는 것이다. 소진과 고갈의 허탈과 지루를 견뎌낼 만큼의 뻔뻔함이 있다면 아마도 이 일을 시작하지 못했을 터이다. 하루하루를 무의미와 멍 때림으로 흘려보내기에는 의미의 집적체인 책이 쏟아내는 아우라를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 미시마샤의 사장 미시마 구니히로도 그랬다. “‘뭘 위해서’ 하는지 잘 모르겠는 일을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소화해 내는 와중에, 감각이 마비”되어 “생각해야..
[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9> 군사독재 어둠을 깨며 함께 읽기 35년 (시흥 상록독서회) “저도 형님들한테 듣기만 했습니다. 첫 인연은 1978년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독서회가 출발한 것은 1981년부터죠. 지금은 영등포 평생학습관에서 만나지만, 그전에는 구로도서관에서 스무 해 동안 함께했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시흥의 헌책방 ‘씨앗글방’ 뒤쪽의 골방에서 같이 읽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씨앗독서회였습니다.”기억의 샛길을 더듬느라 정화양 씨의 목소리가 아련하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수줍고 쑥스럽게 입술이 세월을 탄다. 상록독서회는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의 독서공동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 1970년대 말 시흥의 달동네에서 열린 한 야학에 다녔던 청년들이 모여서 시작했다. 요즘처럼 배움이 흔하지 않을 때, 야학은 집안사정 탓에 배움을 얻거나 계속하지 못한 이들이 어울려 배우던 시민 자..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②] ‘오베라는 남자’는 어떻게 2030을 유혹했나? 이홍 대표와 같이 꾸미는 프레시안 좌담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블로그에 옮겨 놓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대담은 지난달에 한 것인데, 너무 바빠서 미처 블로그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올려둡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어떻게 2030을 유혹했나?[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②] 이번에는 문학 작품 두 권을 다뤘습니다. 휴양지에서도 ‘오베 열풍’을 일으킨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베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다산책방 펴냄)가 첫 번째 책입니다. 스웨덴의 평범한 블로거였던 저자가 쓴 첫 책이 5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곧 영화로도 나옵니다.또 다른 책은 『황금방울새』(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은행나무 ..
[문화일보 서평] 부정부패속 기회의 땅… ‘중국의 이중성’ 까발리다 오랜 탐사로 다져진 엄밀한 사실을 토양 삼고 음악 소리가 들릴 정도로 유려한 문장을 줄기 삼아서 공론(公論)의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다. 저자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면서도 전혀 상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세계의 중심 문제를 드러내려는 올곧은 정신, 취재를 누적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치열한 열정만이 허락된다.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주제 하나만을 다루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세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깊이 파고들면서도 전체를 동시에 통찰하는 힘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논픽션이다.《뉴요커》의 중국 전문기자 에번 오스노스는 아직 이름이 낯설다. 『야망의 시대』(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2015)가 첫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썼다. 논픽션의 모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