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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작은 출판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아침독서신문에서 발행하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에 실은 서평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들로부터 출판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인데, 이번에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작은 출판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니시야마 마사코,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김연한 옮김, 유유, 2017)



“잘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책을 만드는 일만이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을 밝혀 줄 겁니다.”

이 문장에 자꾸 눈길이 머무른다. 몇 번이고 되돌아와서 읽는데, 마음의 호수에 ‘압도적으로’라는 부사가 울림을 일으킨다. 선명한 결기가 만드는 단호한 아름다움. 아름다움 아래 가로놓인 고통의 온갖 무늬가 눈에 밟혀 차마 책장을 넘길 수 없다. 아카아카샤의 대표 히메노 기미가 한 말이다. 아카아카샤는 일본의 사진 전문 출판사로 그녀가 혼자 운영하는 1인 출판사다. 

하기야 이런 대담한 기백도 없이 어찌 혼자서 출판을 하랴. 니시야마 마사코의 『일본의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김연한 옮김, 유유, 2017)은 기대를 자주 배반하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책 만드는 일에서 자신만의 재미와 감동을 추구하는 일본 소출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낸 책이다. 유메아루샤의 다니카와 메구니도 히메노와 비슷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인다.

“파는 사람도 이 책을 좋아하고, 사는 사람도 한 권 더 사서 다른 이에게 선물할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을 목표로 삼고 싶어요.”

판매를 나중에 고민하는 무모함이 책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촉발한다. 무명의 저자가 발굴되고 소수의 목소리가 울림을 얻는다. 대다수 사람들이 출판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의외의 책을 만들어 낸다. “‘출판사는 이래야 한다, 출판사는 이렇다’고 고정된 관행들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가능의 영토를 개척한다. 

출판이란 모두가 꿈꾸는 베스트셀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 미디어로서, 즉 소수의 소리를 담는 미디어이자 소수를 위한 미디어로 존재할 때 더욱 빛난다. 소출판사의 분투는 오늘의 현실에 미래의 출판을 쓰는 어려운 실천을 보여 준다.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책의 가치는 팔린다, 안 팔린다만이 아니다. ‘팔고 싶다’는 것도 있다. ‘안 팔릴지’도 모르지만 ‘팔고 싶다’. 어찌 보면 이것이 더 중요하다. 불안을 견디면서,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는 새벽을 향해 성냥불을 던지는 것, 이러한 용기로부터 묘한 흥분이 일어난다. 

그래서 ‘출판의 원점’을 고민할 때마다 나는 ‘소출판’에 대한 책을 읽는다. 스무 해 가까운 오랜 습관이다. 와타나베 미치코의 『일본의 소출판』(김광석 옮김, 신한미디어, 2000)을 시작으로 나카오카 요시유키의 『출판 프로젝트 X』(김성민 옮김, 열린책들, 2006), 고지마 기요타카의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박지현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7), 프로파간다 편집부의 『지금 여기 독립출판』(프로파간다, 2013) 등이 뒤를 이었다. 주로 일본의 소출판을 다룬 책들인데, 작은 규모로 무거운 현실을 굴착하려는 노력이 기발한 창발성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수록하고 있어서 읽기만으로도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일본의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은 분명히 이 목록에 새로 추가될 것이다. 책을 읽어 보니 미시마샤 같은 거의 고정 출연자도 있고, 토요샤 같은 주목했던 소출판사도 있다. 하지만 출판사 대부분은 또다시 낯설다. 현실의 힘에 치여 수없이 명멸하는 중에도, 책의 매력에 끌려서 또다시 출판의 다양한 도전이 이룩된 것이다. 치이샤이쇼보 대표 야스나가 노리코는 말한다.

“공을 여러 번 다른 사람에게 던지다 보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서 생각지도 못한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될까 안 될까. 재미있겠다고 직감하면 과감하게 나아가요. 다만, 나아간다고 다 잘되는 게 아니어서 혼자는 역시 두려워요. (중략) 그래도 시야가 좁아지지 않도록 나부터 움직여야 합니다.”

사실, ‘1인 출판사’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바깥에서 보기보다 출판은 아주 복잡한 일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 제작, 마케팅, 홍보, 관리 등 일의 세부가 끝도 없는데, 하나하나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한다. 여러 명이 협업하는 보통의 출판사에서도 일이 한창 쏟아질 때에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다. 미시마샤의 미시마 구니히로가 말한다.

“출판은 하고 싶다는 욕구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 욕구의 성과를 사회에 명확히 전달하고 싶다면 어떤 것과 연결해서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 자신만의 이념과 방법을 가져야 합니다.”

아주 많은 난관을 딛고 혼자 힘으로 책을 출판하는 것은 살아서 기적을 보는 일과 같다. 저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다. 고밀도의 지성과 섬세한 감성을 갖춘 데다 미모사처럼 예민해서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일이 틀어지기 십상이다. 서점에 가면 책이 또 얼마나 많은가. 바닷물에 빗방울 떨어지듯, 새 책이 나와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독자들 역시 만족시키기 어렵다. 취향이 분명하고, 내용은 훌륭하고, 모양은 아름답고, 가격은 저렴한 책을 원한다. 

도매상인 송인서적의 부도 이후 한국출판을 덮친 갖가지 재앙이 잘 보여주듯, 소출판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유통의 어려움이다. 일본이라고 다를 게 없다. 사토야마샤의 기요타 마이코가 말한다. 

“1인 출판사로서 책을 만들면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서점에 가서 세심하게 영업할 수 있느냐를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도서유통회사예요.” 

아무리 좋은 책을 만들어도 독자들 눈앞까지 가져갈 수 없다면 모든 수고가 헛되다. 대형 출판사와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서 유통의 현실은 책에 뜻을 세우고 출판 현장에 뛰어든 작은 출판사들을 좌절시키곤 한다. 작은 출판사의 책이라도 충분히 독자에게 그 존재를 알릴 수 있고, 노출할 수 있는 유통 시스템의 공적 구축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마무시하게 작은 출판사에 가혹하다. 애써 출판하는 책이라 할지라도 독자들 눈에 가 닿기도 전에 반품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영업에 집중한다고 특별한 해결책이 서지도 않는다. 도요샤 대표 도요타 쓰요시는 솔직하다.

“책은 이미 스토리를 갖춘 상품이라 선전을 과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홍보보다는 서점과 저자 양쪽의 힘을 빌려서 책을 팝니다.” 

공감 간다. 소출판사는 어설픈 영업 활동에 나서는 것보다 일단 책 만들기에 집중한 후, 저자와 서점의 힘을 빌리는 편이 훨씬 낫다. 나 역시 작은 출판사 대표와 밥자리를 함께하거나 상담을 치를 때마다 비슷한 권고를 하곤 한다.

작은 출판사는 콘텐츠 전략 말고는 다른 성장 전략이 있기 힘들다. 마케팅 활동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일단 출판하고 싶은 분야를 정하고, 관련한 양질의 원고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찾는 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힘겹게 치르는 과장된 마케팅보다 좋은 책들로 이루어진 목록의 치밀한 구축이야말로 작은 출판사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따라서 작은 출판사일수록 원고를 선정하고, 편집과 디자인을 통해서 책의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데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미나토노히토의 우메노 유지가 핵심을 찌른다.

“본문 레이아웃이 정해질 때까지 시행착오의 연속이에요. 그 작업을 통해서 지금 만드는 책의 본질을 잡거나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공정이 없으면 어떻게 책으로 만들지 잘 안 보입니다. (중략) 책의 핵심에 접근해서 그것을 어떻게 전개하고 독자에게 전할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이걸 ‘책의 핵심을 끝까지 잡아낸다’고 합니다.”

기요타 마이코도 같은 곳에 강조점을 준다.

“현시대 상황과 비춰 봐서 저자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밖으로 내보내면 가장 빛날지를 궁리합니다. 그건 책을 만드는 데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책의 핵심을 잡아내 빛나게 하는 일이 사실 출판의 전부다. 이를 출판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면, 출판의 미래는 아마도 이러한 출판의 장인들이 생계에 따른 고민 없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미시마 구니히로가 말한다.

“즉시 일할 능력과 단기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것은 이 일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중략) 회사는 사람이 전부이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날마다 성장한다고 믿고 가야 출판의 밝은 미래로 이어집니다.”

크든 작든 규모에 관계없이 이는 출판사에서 직원을 구하려 할 때, 가장 먼저 따져야 할 부분이다. 원고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이를 책으로 구현할 수 있는 출판의 장인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나아가려 할 때, 어쩌면 작은 출판사들이 가장 명심해야 할 바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혼자 있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인간에게 전혀 익숙한 일이 아니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심지어 싸움에서도, 인간은 타자와 같이 살도록 진화해 왔다. 모두 제멋대로 사는 자유를 바라지만, 그 자유를 통해 공생(共生)을 익혀 가는 일이 우리 삶의 진짜 형식이다. 

“모든 것을 감수하고 앞으로 5년, 10년 팔고자 한다면, 제가 100퍼센트 만족하는 책이어야 일이 괴롭지 않아요. 그래서 만족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책은 ‘혼자’라는 가혹한 환경에서도 양팔을 뻗은 채 저자와 독자와 함께 공생의 길을 열어 가는 소출판사들의 다양하고 치열한 궤적을 담고 있다. 불면의 밤에 동반할 좋은 친구를 얻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