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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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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정우, 전혜린, 전태일, 또 다른 삶을 꿈꾸다 《문화일보》 서평. 이번에는 박숙자 선생의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푸른역사, 2017)를 다루었습니다. 『속물 교양의 탄생』(푸른역사, 2012)에 이어서 이번에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독고준, 정우, 전혜린, 전태일, 또 다른 삶을 꿈꾸다 박숙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푸른역사, 2017) 읽으면서 가슴이 찢겼다. 때때로 울컥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고, 늙으신 어머니가 겹쳤다. 평생을 노동으로 자신을 증명했던 아버지는 ‘죽지 않은’ 태일이었고, 공장에서 ‘다행히’ 정년을 한 어머니는 상경하지 않은 영자였다. 달동네에서 자라 문학을 하고, 또 책을 만들며 살았던 나 자신은 이 책에서 다룬 준과 정우와 혜린의 정신적 파편이자 후예였다.준은 『광장』의 독고준이고, 정우는..
[21세기 고전] 어둠을 쌓아 노래를 만들다 _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민음사, 2010) ※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21세기 고전’. 이번엔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를 다루었습니다. 이 작품이 나왔을 때, 우리는 용산이라는 인세지옥을 함께 목격하고 망연해 있었습니다. 사람이 불꽃 속에서 스러지는 참사를 보았지만, 입술이 얼어붙어 이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견디면서 언어를 보태 연대를 깊게 이루는 의무를 어떻게 다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때 황정은이 『백의 그림자』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막힌 목을 뚫고, 굳은 혀를 풀고, 닫힌 입술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그 마음을 지켜보았기에, 여기에 기록해 두고 싶었습니다. 어둠을 쌓아 노래를 만들다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민음사, 2010) 『백의 그림자』와 함께 한국문학은 ‘새로운 세상’과..
[21세기 고전](2) 문학은 참혹한 현실에서 황금빛 새를 기르는 일이다 _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경향신문》에 한 달에 한 차례 ‘21세기 고전’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 고전’은 2000년 이후 출간된 도서 가운데 다시 곱씹어 읽을 만큼 깊이와 넓이를 지닌 책, ‘이 시대의 고전’ 반열에 오를 책을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엄선, 주 1회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제가 맡은 부문은 문학 부문입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2001)에 이어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2002)를 소개합니다. “글씨가 있는 세상은, 참 놀라운 세상이란다.”아홉 살 동구는 아직 글씨를 읽지 못한다. 속 깊고 정 넘치는 아이이지만, “언어적 성장이 교란”(도정일)되어 있다. 그런데 동구가 글씨를 못 읽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 탓이다. 못 읽어서가 아니라 너무 잘 읽어서다. 언어의 내포와 외연, 사람이 표현하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