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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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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기획회의》 457호 특집은 ‘#언더35, 그들을 지지한다’입니다. 최근에 주목할 만한 책을 하나 이상 펴낸 서른다섯 살 이하 젊은 작가들을 한데 모아서 특집을 꾸렸습니다. 이 글은 그들을 응원할 겸해서 쓴 ‘기획의 말’입니다. 지면 때문에 잡지에는 편집해서 실었는데, 아래에 전문을 옮겨 둡니다.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창조자는 스스로 특수한 미로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상구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벽을 더듬고, 거기에 머리를 부딪혀가면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창조자가 될 수 있다.”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말이다. 작가들은 멀쩡한 길에서 미로를 본다.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매면서, 막다른 골목에 스스로 이른다. 되돌아갈 수조차 없다. 돌아선 곳도 어차피 막다르니까. 『..
집어들고 읽어라(Tolle, Lege) _ 읽기의 힘에 대하여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고백』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묻는다. 인생 전체가 비틀린 것 같은 지독한 불안에 사로잡혀 안절부절못하면서 그는 정원을 이리저리 서성인다. 마음이 좀처럼 답을 얻지 못하고 미몽(迷夢)이 길어질 때, 문득 옆집에서 아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톨레 레게(Tolle, Lege)!”집어들고 읽어라.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 계시하지 못할 때, 흔히 아이의 입을 빌리곤 한다. 읽어라. 희망 없는 좌절이 길어질 때, 해답 없는 절망이 연이어질 때, 하느님은 말한다. 집어들고, 읽어라.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를 다시 읽었다. 성서를 읽은 후 신의 목소리를 듣고, 교회를 다시 써서 세계의 기울어진 축을 바로 세웠다.읽기는 인간이 혼자 살아가지 않도록 막아 주는, 신 없이 신의 언어..
모든 책은 스승이다(서울신문 칼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신문에 짧은 에세이 하나를 썼습니다. 인생 스승이 된 책을 소개해 달라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책이 떠올라서 괴로워하다가 아예 모든 책은 스승이라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스승의 책’이 따로 어찌 있으랴. 모든 책은 스승이다. 다만 무릎의 책이 있고, 가슴의 책이 있고, 어깨의 책이 있고, 머리의 책이 있을 뿐이다. ‘무릎의 책’은 패배와 절망의 자리에서 다리에 일어서는 근육을 만들어 준다. ‘가슴의 책’은 비루한 현실로부터 심장에 뜨겁고 두근대는 소리를 되돌려준다. ‘어깨의 책’은 어둡고 답답한 사방으로부터 눈에 밝고 맑은 전망을 트여준다. ‘머리의 책’은 어지럽고 흐트러진 세상으로부터 마음에 똑똑하고 분명한 갈피를 잡아 준다. 피렌체로부터 버림받은 단테는 ..
[문화산책] 새벽 숲길을 거닐며 평명(平明).어둠 속, 흙으로 맨발을 푸는 순간, 이 말이 떠올랐다. 새벽을 나타내는 말이다. 평(平)은 평평하고, 평화롭고, 평온하고, 평등하다. 명(明)은 밝고, 맑고, 환하고, 깨끗하다. 어떻게 조합해도 아름답다. 온 세상이 골고루 빛으로 차오르는 때, 소나무 청량한 향기가 사방으로 가득하다. 콩잎이 바람에 스륵스륵 소리를 낸다. 이슬을 흠뻑 덮어쓰고도 귀뚜라미는 씩씩하고 우렁차게 노래한다.“뭐가 쓸쓸해? 뭐가 쓸쓸해? 뭐가?! 뭐가?! 뭐가?!”(황인숙, 「가을밤 2」) 아아, 정말 쓸쓸하구나. 처음 물음표 둘은 즐거운 반문이지만, 뒤쪽 물음느낌표 셋은 어쩌면 쓰디쓴 울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름은 아직 물러서지 않았고 가을은 미처 이르지 않았으니, 바람이 불어도 쓸쓸하지 않고 소름이 돋아도 여..
고요에 대하여(이남호) 고요는 우리를 향기롭고 높은 세계로 데려간다. 세상의 변화는 점점 고요를 바보로 만들지만, 고요는 바보가 아니다.―이남호 올해 열세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이남호의 『일요일의 마음』(생각의나무, 2007)이다. 단정하고 우아한 고독의 문장들로 가득 찬 에세이집이다. 제목 ‘일요일의 마음’은 미당 서정주의 시 「일요일이 오거던」에서 따왔다. “일요일이 오거던/ 친구여/ 인제는 우리 눈 아조 다 깨여서/ 찾다 찾다 놓아 둔/ 우리 아직 못 찾은 마지막 골목들을 찾아가 볼까”로 끝나는 성찰의 시다. “찾다 찾다 놓아 둔” “마지막 골목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나 끝내 챙기지 못했던 아름다운 가치들을 상징한다. 그건 일상의 부단한 번잡함 속에서는 도저히 찾지 못할 것이다. 오직 “일요일”에만, 고요와 정숙..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다 삼류 작가의 시시한 작품보다 거장의 걸작을 오해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린 시절, 루카치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깃발 아래 읽었던 발자크의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없었던가. 그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사상이 왕당파에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 핍진한 묘사 때문에 소설 내용이 ‘부르주아의 승리’라는 역사적 법칙의 엄중함에 따른다는 것만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려 들었다. 작품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관념들의 전개, 귀족 세력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상인 세력의 발흥, 그 갈피에서 오로직 역사 법칙에만 복무하는 듯한 인물의 행위들, 이런 독서는 결국 나의 발자크 읽기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나는 발자크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극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