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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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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가 될 것인가, 시인이 될 것인가 《중앙선데이》에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입니다. 지난달, 풍월당에서 강의했던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다가 영감을 얻어 일종의 ‘문학적 꼰대론’을 써 보았습니다. 강의를 위해 반복해서 작품을 읽다 보니, 사르트르가 평생에 걸쳐 싸웠던 삶의 실체, 이른바 부르주아적 삶에 깃든 역거운 허위의식의 실체가 조금은 들여다보이는 듯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죠.《중앙선데이》 편집이 바뀌어서 조금 손보았는데, 아래에 전문을 옮겨 둡니다. 꼰대가 될 것인가, 시인이 될 것인가 “40대가 넘으면 ‘경험의 직업인’들은 작은 집착이나 몇몇 속담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들은 자동판매기가 되기 시작한다. 왼쪽 주입기에 동전 몇 개를 넣으면 은종이에 싸인 일화가 나온다. 오른쪽 주입기에 동전 몇 개를 넣으..
201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정리 (2) _인도네시아 시인 구나완 모아맛의 연설 중 우리는 인간 평등의 필연성을 강조하려고 글을 쓴다. 우리는 삶에 대화와 토론을 제공하려고 글을 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부양한다. ―구나완 모아맛(Goenawan Mohamad, 인도네시아 시인)
거대한 여백 - 디자인에 대한 몽상(《디자인》 2012년 7월호) 이 글은 작년 7월에 월간 《디자인》에 실었던 글이다. 게재 직후에 원고 파일을 실수로 삭제하는 바람에 사라졌는데, 북디자인과 관련해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문득 발견했다. 과거에 쓴 글이 어느 날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다. 여기에 옮겨 둔다. 거대한 여백 디자인에 대해서 쓰려 하니 가장 먼저 거대한 여백이 떠오른다. 순전한 흰색, 어떤 문자도 문양도 그 위에 그려질 수 없는 절대 공간. 한창 산을 좋아했을 때, 새벽에 텐트 문을 열고 나오면 첫 빛으로 자태를 드러내면서 망막을 하얗게 태우고 언어의 길을 단숨에 끊어버렸던 눈 내린 직후의 흰색 산야. 어느 한밤중 문득 자다 일어나 꿈속에서 썼던 아름다운 시를 끼적여보려고 대학 노트를 여는 순간, 형광등 아래에서 날카롭게 빛을 뿜어내 머릿속의 리셋 ..
이원 산문집 프로젝트를 시작하다 책을 오랫동안 스스로 만들지 않게 되면 원고의 세부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감각들이 서서히 무뎌진다. 저자의 문장을 이루는 언어들을 쉼표 하나가 부각하는 그 사소함 숨결까지 함께 느껴 가려면 단지 독자가 되어 책으로 읽는 것보다는 역시 반복적 교정 작업이 최고다. 문장이 일으키는 바람을 타고 단숨에 읽어 가야 할 곳과 멈추어 한없이 느리게 쉬면서 읽어 가야 할 곳을 피부에 새기듯 확연히 느끼려면, 역시 쉼표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문장을 조심스레 건드려 보거나 부사와 형용사의 위치를 이리저리 조정하면서 입속으로 중얼거려 보는 게 가장 좋다.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느낌과 함께 저자의 고조된 언어 감각을 내 것으로 만들고, 그를 통해 마음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벼려 내는 것. 그렇다. 노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