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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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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디자인에 대하여 우리는 장소를 설계하는 것처럼 페이지를 설계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 일은 높은 책임감을 요구하는데, 페이지 위에 텍스트를 잘못 놓아두는 것은 곧 저자의 생각을 왜곡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학적 느낌을 생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 종이에 어떤 요소들을 늘어놓고 인쇄할 때에는, 아무리 사소한 텍스트라 할지라도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 책 한 권을 설계하는 일은, 아니 심지어 한 페이지라도 설계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작업이다.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레이먼드 기드 이 구절은 오래전에 슈타이들 전시회에 갔을 때 벽에 적힌 것을 메모해 둔 것이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바깥 창문이 얼어붙었다. 이러한 장인성을 잃고 나면 출판이란, 책이란 도대체 무엇이..
슈타이들조차 책을 만드는 데에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슈타이들조차 책을 만드는 데에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대림미술관의 슈타이들 전시회를 다녀와서 전시회 관람을 그 자리에서 끝내는 것은 대개의 경우 무척 어리석은 일이기 쉽다. 물론 현장의 생생함이 만들어 내는 활기 찬 리듬,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채와 그들을 빚어 내는 공간의 놀라운 조화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장의 인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법이라서 며칠 또는 몇 주의 시간이 지나면 메모 몇 줄과 머릿속에서 공명하는 몇 덩이 생각들로 약화된다. 윤곽선은 희미해지고 느낌은 잔잔해진다. 현장의 감격은 사라지고 냉냉한 분석만이 남는다. 그러나 나는 또 알고 있다. 인상이란 우리를 속이기 쉽다는 것을, 진정한 전시회는 도록을 읽는 육체 노동과 사색의 시간을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필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