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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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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관료화’라는 말을 배우다 _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본 이데올로기』(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를 읽다 비평가의 글은 자기가 속한 시대를 분석하고 그에 적절한 실천의 도구를 제시하면 그만이지만, 그 행위를 통해 후세의 사람들에게 생각의 도구를 제공하면 금상첨화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본 이데올로기』(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를 읽다가, ‘문장의 관료화’라는 표현에 사로잡혀 벌써 몇 주째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심장이 아주 예리하게 베인 느낌이다. 나 자신이 썼던 많은 글이 머릿속에 줄지어 떠오르면서 일종의 자괴감에 시달리는 중이다. 다케우치는 말한다. 무의미한 글이 세상에는 없지 않다. 가령, 관료의 글이 그렇다. 학자가 써내는 글도 태반이 그렇다. 문학자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 상태가 현재 일본에서 특히 눈에 밟힌다. 일반적으로 말해 문장의 관료화라는 현상을 인정해야지 싶다. (1..
신경숙 표절과 관련한 창비의 대응에 대한 단상 "단 하나의 사안을 공백으로 남기기 위해, 영원히 토론하는 100인 동색의 지식인 집단."이번 가을호 창비와 백낙청 선생의 페이스북 글과 관련한 논란에서 황호덕 선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따로 또 이와 관련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창비에서 자신의 주장을 빌미삼을 때 타인의 의도를 짐작해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우리는 너희와 달리 타인의 의도(양심)를 들여다볼 수 있다. 대충 이런 입장인데, 이는 전형적인 관심법(觀心法)이죠. 누군가를 옹호하기 위해 그 마음을 들여다본 이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도 그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들의 글에 깔린 사악한 의도를 알고 있다. 가령, 이렇게 말이죠.사실 윤지관 선생의 글은 표절이 있는 작품도 훌..
문학권력 문제에 대하여 《문화일보》와 《동아일보》에 제 이름이 실린 기사가 나왔습니다. 문학권력 문제는 그다지 다루고 싶은 주제는 아닙니다. 비평 자본과 출판 자본이 한몸으로 결합되어 상생하는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말 한마디 보탠다고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창비든, 문학동네든, 문학과지성사든 좋은 작품을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 이를 훌륭한 비평으로 떠받쳐 왔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모두 사기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문학에 지금까지 헌신해 온 세 출판사의 선의를 결코 의심하지 않지만, 결국 이 출판사들도 이익을 내고 손해를 줄여 파산을 면해야 하고 해마다 직원들의 복리를 향상해야 하는 기업입니다. 무슨 문학 협동조합도, 사회적 기업도 아니고, 기업의 그러한 기본 기능을 무겁게 떠맡은 회사들입니다. 문학 권력 문제를 논..
메튜 베틀스,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강미경 옮김, 넥서스북스, 2004)를 읽다 추석 명절 첫날, 노원정보도서관에서 빌려온 메튜 베틀스의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강미경 옮김, 넥서스북스, 2004)을 완독했다. 출간되었을 때 상당히 흥미로워 보여서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절판되는 바람에 구입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10월에 대전 유성구 도서관 모임에서 특강이 있는데, 이 기회를 틈타 평소 많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도서관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책들을 찾아서 읽는 중이다. 이 책도 그중 하나이다. 앞으로 며칠 동안 사노 신이치의 『누가 책을 죽이는가』(한기호 옮김, 시아출판사, 2002), 로널드 맥케이브의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오지은 옮김, 이채, 2006), 이노우에 스스무의 『중국 출판 문화사』(장원철·이동철·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