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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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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7] 호학(好學) _ 배우기를 좋아하다 5-28 공자가 말했다.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성스럽고 신의 있는 사람이 거기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이 장에 대하여 주희는 아름다운 자질은 얻기 쉬우나 지극한 도는 듣기 어려우므로, 배움이 지극하면 곧 성인이 될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시골뜨기에 한낱 머무를 뿐이므로 사람은 배움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약용은 이는 공자가 자신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 고귀한 일임을 설명한 뜻이라고 했다. 『논어』 전체에 걸쳐 충(忠)과 신(信)은 군자가 되려는 이들이 반드시 힘써야 하는 덕목으로 칭송된다.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미덥기만 해도 이미 훌륭한 성품이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
공자의 인생 자술(自述) [세계일보 칼럼] 공자의 인생 자술(自述)은 아주 짧다. 고작 서른여덟 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공자는 아주 장수했다. 가장 아끼던 제자인 안회(顔回)와, 과정(過庭)의 가르침을 베푼 아들 공리(孔鯉)가 먼저 죽어버리는 참척의 슬픔을 견뎌야 할 정도였다. 햇수로는 70년이 넘고, 날수로 따지면 2만 6000여 일에 이른다.전란이 끝없이 이어진 춘추 시대, 비교적 낮은 신분인 사(士)로 태어났으나 세상을 구제하려는 큰 뜻을 품고 천하를 편력한 삶이었다. 정말로 파란만장했다. 애제자로부터 “선비가 굶주리는 일도 있답니까?”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고, 세상에 초연한 채 숨어 사는 은자로부터 “상갓집 개”라고 비웃음당하기도 했다. 사연을 모조리 글로 옮기면 수십 수레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공자는 인생의 자잘한 굴곡을 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정약용)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배운다는 것은 곧 깨닫는 것을 말한다. 그럼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이 잘못인지를 깨우치는 것이다. 잘못을 깨우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른 말로 깨우칠 수 있을 뿐이다. (중략) 이미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부끄러워 뉘우치고, 다시 그 잘못을 고쳤을 때 비로소 배운다고 할 수 있다. ― 다산 정약용, 『아언각비』 서문 중에서 올해 열일곱 번째 책은 한정주 외의 『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포럼, 2007)다. 일찍이 공자가 사물(四勿)의 하나로 다룰 만큼,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는 선비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의 하나였다. 이 책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쓴 문집에서 ‘말하기’와 관련한 여러 문장들을 모은 책이다. 곁에 두고 조금씩 읽..
나만의 인생을 만들고 싶을 때(사이토 다카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만의 인생을 만들고 싶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앞서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다. 특히 ‘고전’이라고 인정받는 책들은 큰 도움이 된다. 고전은 오랜 시간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책, 인류에게 원대한 비전을 주었거나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해 준 책이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살아남은 만큼 거기에는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담겨 있다. ― 사이토 다카시 올해 열여섯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오근영 옮김, 걷는나무, 2014)이다. 예전에 같은 저자가 쓴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홍성민 옮김, 뜨인돌, 2009)를 재미있게 읽은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골랐다. 일본의 신서가 흔히 ..
배움에 대하여(우치다 타츠루) 우치다 다츠루의 『하류지향』(김경옥 옮김, 민들레, 2013)은 예전에 읽었던 책이다. 이번에 핸드폰의 앨범을 정리하면서, 사진으로 찍어 두었던 부분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 책은 교육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다츠루의 견해는 배움의 무교환성에 대한 통찰에 기대어 있다. 배움이란 처음부터 비동기적 교환, 대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교환에 기대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에서 즉각적으로 필요로 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은 교육의 목표가 아니라 ‘외계의 변화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된다. 우치다 다츠루는 배움의 인류학적 의미는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배움이란 자기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