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산책

(2)
[문화산책] 새벽 숲길을 거닐며 평명(平明).어둠 속, 흙으로 맨발을 푸는 순간, 이 말이 떠올랐다. 새벽을 나타내는 말이다. 평(平)은 평평하고, 평화롭고, 평온하고, 평등하다. 명(明)은 밝고, 맑고, 환하고, 깨끗하다. 어떻게 조합해도 아름답다. 온 세상이 골고루 빛으로 차오르는 때, 소나무 청량한 향기가 사방으로 가득하다. 콩잎이 바람에 스륵스륵 소리를 낸다. 이슬을 흠뻑 덮어쓰고도 귀뚜라미는 씩씩하고 우렁차게 노래한다.“뭐가 쓸쓸해? 뭐가 쓸쓸해? 뭐가?! 뭐가?! 뭐가?!”(황인숙, 「가을밤 2」) 아아, 정말 쓸쓸하구나. 처음 물음표 둘은 즐거운 반문이지만, 뒤쪽 물음느낌표 셋은 어쩌면 쓰디쓴 울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름은 아직 물러서지 않았고 가을은 미처 이르지 않았으니, 바람이 불어도 쓸쓸하지 않고 소름이 돋아도 여..
[문화산책] 연필을 들고 떠나는 여행 괴테의 생애는 셋으로 나누어진다. 바이마르-이탈리아-바이마르. 연암 박지원의 생애도 마찬가지다. 한양-연경-한양. 한 해 반에 걸친 이탈리아 기행은 괴테에게 “마치 익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필연성, 즉 운명의 형식으로 제시됐다. 여섯 달에 걸친 연행(燕行)은 박지원에게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충격의 연속으로 다가왔다. 사실 모든 작가는 여행을 통해 극적으로 변신한다. 바이마르 궁정에서 질식해 가던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을 떠났다 돌아오면서 상상력에 물기가 오르고 사유에 품격이 얹히는 극적 전환을 맞이했다. 할 일 없이 세월을 죽이던 중년의 한량 박지원은 그 당시 세계의 수도인 북경의 문물을 접한 후 바닥이 하늘로 하늘이 바닥으로 뒤집히는 생각의 격변 속에서 대문장가로 거듭났다.여행은 왜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