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에는 거리의 생활이 없다
어릴 때 살던 서울 약수동 달동네는 골목 천국이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집들이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좁고 넓은 길들을 거미줄처럼 뽑아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지나지 못할 골목에서 양보의 미덕을 익혔고, 동네 아이들 비밀 장소인 세 평 공터에서 놀면서 우정을 쌓았으며, 과일, 채소, 생선, 철물, 등유, 곡물, 잡화, 약국 등 구석구석 가게들을 구경도 하고 심부름도 다니면서 셈을 배웠다.약수동 떠나 서른 해 가까이 살아온 동네가 서울 노원이다. 갈대 무성한 드넓은 벌판을 바둑판처럼 정리해 비슷한 건물들을 줄지은 신도시다. 등산할 수 있는 산과 산책할 수 있는 강이 있고, 집 근처 한두 블록 안에 꼭 공원이 있다. 백화점과 쇼핑센터, 종합병원과 대학, 미술관과 과학관, 학원가와 상점가 등도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