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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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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9] 공야장(公冶長) _공자의 사위 이야기 5-1 공자가 공야장을 두고 이야기했다. “사위 삼을 만하다. 비록 옥에 갇힌 몸이지만, 그의 죄는 아니다.” 그러고는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子謂公冶長, 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공자는 제자들을 평하면서 가장 먼저 사위인 공야장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고는 그가 범죄 혐의로 옥에 갇힌 사람임을 환기한다. 고대에는 연좌의 위험이 있었기에, 죄인과 인척을 맺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공야장의 어떤 점을 좋게 보았기에 공자가 딸을 시집보낼 만하다고 말했는지는 문장에서는 알 수 없다. 공야장이 실제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구체적으로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자가 이런 사람에게도 딸을 시집보낸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공자는 사람 보는 눈이 아주 비범했던 것이다. 공자는 세간의 눈이 아니..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김부식(金富軾)의 대흥사에서 소쩍새 울음을 듣다(大興寺聞子規) 대흥사(大興寺)에서 소쩍새 울음을 듣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 속세 손님의 꿈은 이미 끊어졌는데,소쩍새는 울다가 또 흐느끼네.세상에 이제 공야장(公冶長)이 없거늘,누가 알겠는가, 마음에 맺힌 한을. 大興寺聞子規 俗客夢已斷,子規啼尙咽. 世無公冶長, 誰知心所結. 김부식은 고려 인종 때 문인으로 『삼국사기』를 지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문장이 뛰어나고 시에도 밝았습니다. 묘청(妙淸), 정지상(鄭知常)이 주도한 서경(西京, 평양) 천도 운동을 저지하고 이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진압한 공로로 정권을 잡아서 정치를 좌지우지했으며, 말년에는 스스로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사후에 무신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목을 베었을 만큼 문벌 귀족의 상징이었습니다. 대흥사(大興寺)는 개..
[논어의 명문장] 욕거구이(欲居九夷, 구이 땅에서 살고 싶다) 선생님께서 구이(九夷) 땅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 [그러자] 누군가 말했다. “누추한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거기에 산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공야장」 편에 나오는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돈다면[道不行, 乘桴浮于海]”이라는 구절과 같이 읽어야 한다. 사실 공자는 혼란한 세상을 떠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천하를 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포부가 수용되지 못하는 현실에 때때로 좌절하곤 했다. 그래서 탄식하듯이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선해서 읽어야 할 것은 ‘구이(九夷)’의 장소적 실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