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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미쳐 버리고 싶은 세상에서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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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의 「강」의 전문이다. 자명한 산책(문학과지성사, 2003)에 실려 있다.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은데, 도무지 미쳐지지 않는 요즘 같은 현실에서 꺼내어 거듭해 읽고 싶은 시다. 

시의 한복판에 있는 저 역동하는 감정인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은 이인성 장편소설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문학과지성사, 1995)은 욕망과 현실, 언어와 삶 사이에서 갈등하고 헤매이는 현대인의 실존적 초상을 고도의 문체 실험을 통해서 보여준다. 거기에서 우리는 언어화한 현실, 문체화한 마음을 날것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황인숙은 답답한 현실 탓에 질식해 가는 그 마음을 자연의 속삭임 앞으로 데려간다. 우리는 흔히 사람 사이에 생겨난 이 미칠듯한 마음의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함께 수다 떨면 해소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 그 외로움과 괴로움은 전염되어 불어날 뿐 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외로운지”와 “괴로운지”와 “싶은지”와 “않는지”로 끝나면서 운율을 일으키는 첫 두 행, “심장”과 “옷장”과 “천장”과 “복장”과 “어깃장”과 “애간장”으로 이어지는 4~7행의 운율감, “~에 대해”가 반복되며 펼쳐지는 하소연의 목록 등은 시인의 언어적 감수성이 천상에 닿았음을 보여준다. “심장의 벌레”에서 “옷장의 나비”로, “천장의 거미”로 옮아가는 상상력의 역동은 얼마나 일상적이면서 또한 눈부신가. “~ 말라, ~ 말라, ~말하라, ~ 말하란 말이다, ~말자”로 옮겨가면서 천천히 변주되는 어미들을 통해서 독자의 마음을 강물까지 이끄는 어미의 사용법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이 시는 사실 복장 터지는 일들이 넘쳐나는 인생사, 어깃장을 놓고 애간장을 녹게 만들고 머리 빠개지는 치사한 현실에 대한 폭넓은 공감 위에 서 있다. 가만있어도 하소연이 끝없이 밀려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네가 괴로운 만큼, 나도 괴롭다, 답답하다, 미쳐버리고 싶다는 내적 외침이 쟁쟁하게 울려퍼진다. 그러니 나한테 와서 피 터지게 목소리를 높이거나 침 튀기지 말라는 이 매정함과 단호함의 밑바탕에는 공명하는 소리굽쇠처럼 함께 힘들어하는 연민이 있다. 너에 대한, 그래서 나에 대한 공감이 존재한다. 가만있어도 사람이 우스워지는 이 절망적 현실에 대한 슬픔이 깔려 있다.

그러나 사람 사이에서 생겨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은 같이 답답한 사람은 아닐 테다. 같이 슬퍼하고 고통을 나누는 건 인간의 고귀한 자질이고 우애의 출발점이지만, 자기 마음을 풀기 위해 타인을 감정의 하수구로 쓰는 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칫 불안이 전염되고, 공포가 증식되며, 눌렀던 감정이 터져나와 관계가 파탄에 이를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 보라. 나의 괴로움을 그에게 털어놓은 만큼 얼마나 그의 억울함을 들어주었는지. 

연민과 공감이 곧바로 구원이 되는 건 아니다. 구원은 언제나 다른 곳에서 온다. 그것은 하늘의 일이고, 우주의 과업이다. 그래서 시인은 함께 슬픔과 억울을 부풀리는 대신, 미쳐지지 않는 현실에서 미쳐버리고 싶은 마음을 강물 앞으로 데려간다. 

강물은 끝없이 흐른다. 고통과 번민, 좌절과 불안, 근심과 걱정을 아무리 쏟아내도 조금도 쌓이지 않는다. 슬픔이 쌓여서 우울이 되고, 억울함이 쌓여서 울분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의 오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다. 물의 흐름은 절망에 빠진 마음을 정결하게 씻고, 고난에 처한 정신에 용기를 불어넣는다. 저 강물이 흐르듯이, 오늘의 삶은 내일로 변하고, 내일의 삶은 모레로 이어진다. 흐름이 있고 변화가 있는 한, 미래는 영원히 닫혀 있지 않다. 언젠가 답답함은 트임으로 뒤집히고,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며, 좌절은 일어섬으로 변화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내는 쓰디쓰지만, 그 열매는 달디달다. 그러니 흐름이 자기 안에서 확신을 일으킬 때까지, 강물에게 말하고, 또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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