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라, 내 마음이여! 전에는 더 개 같은 일도 참아냈지, 힘을 억제 못 하는 키클롭스가 전우들을 먹어 치우던 그날에도. 너는 굳세게 견뎌냈지, 동굴에서 몰살될 거라 믿었으나 계략으로 끌어낼 때까지 참고 견디지 않았던가!”
주말마다 강남의 한 도서관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함께 읽고 있다.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 과정을 그려낸다. 고난과 위험으로 얼룩진 그 귀향길은 우리 인생 여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우리 역시 날마다 세상에 나가면서 위기를 이기고 죽음을 피해서 무사히 귀가하기를 바라지 않던가.
모험을 통해 오디세우스는 인생에서 행복과 평화를 손에 쥐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려준다.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오디세우스의 영웅적 자질은 ‘트로이의 목마’로 상징되는 기지와 계략이다. 위기를 맞아 눈앞이 캄캄할 때마다 과연 그는 책략과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이겨내서 목숨을 구해내고 승리를 가져온다.
그러나 호메로스에 따르면, 오디세우스의 진짜 미덕은 인내이다. “참아라, 마음이여!” 그는 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도, 기발한 계략이 떠올랐을 때도, 상황이 무르익어 열매가 떨어질 때까지 참을 줄 안다. 감정에 빠져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함부로 행동해 자신을 파멸로 몰지 않는다. 그는 항상 뒷일을 먼저 생각하고 움직인다. 눈앞에서 키클롭스가 동료를 살해했을 때, 격분한 오디세우스는 칼을 빼 들어 그를 찌르는 대신 훗날을 기약한다. 성공해서 혹여 키클롭스를 죽이더라도, 자기 힘으론 동굴을 막은 거대한 바위를 치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를 무시한 행동은 만용에 불과하다. 성급함은 인간을 미망에 빠뜨리고 참을성 부족은 판단 착오를 일으킨다. 슬픔을 참고 울분을 견디면서 그는 “고귀한 새벽의 여신이 오기”를 끈질기게 기다린다. 아침이 되어 양들이 울자, 오디세우스는 술을 건네 키클롭스를 재우고 말뚝을 깎아 그를 눈멀게 한 후, 키클롭스의 힘을 역이용해 바위를 치우게 한 다음 양의 배에 매달려서 동굴에서 탈출한다. 좋은 삶은 인내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내는 포기나 체념과 다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습관적 견딤’은 인내가 아니라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다. 악에 압도돼 무작정 참는 건 인간을 짓밟히는 벌레나 침 없는 벌 같은 무기력한 신세로 전락시킬 뿐이다. 인내란 반드시 불의와 폭력에 저항해 힘을 모으는 굳센 마음이어야 한다. 지혜 없는 기다림은 어리석음이고, 정의 없는 견딤은 나약함이다. 쓰디쓴 인내의 열매를 달콤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위해 견디는가를 놓치면 안 된다.
오디세우스는 말한다. “부부가 한마음 한뜻이 돼 금실 좋게 살림을 살 때만큼 강력하고 고귀한 것은 없소.” 나침반이 있는 삶은 길을 잃지 않는다. 전쟁과 재난을 겪으면서 가족과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일보다 더 좋은 게 없음을 알았기에 오디세우스는 숱한 고난을 뚫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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