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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취소 문화(cancel culture)

 
- 취소 : 자신의 견해와 다른 사람들의 SNS 팔로를 취소하는 데서 연유한 용어.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신공격이나 불매 운동 등을 통해 상대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행위.
- 트롤링 : 관심 끌기, 관심 유발, 화나게 하기 등을 일부러 저지르면서 이를 오히려 즐기는 행위. 누군가를 사회적 제물로 삼아서 남의 감정을 일부러 훼손하고 그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고 시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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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을 감시하고 공개 모욕을 무기로 삼는 문화 권력을 쥔 쪽은 대개 좌파였다.
2017년 캣 로젠필드는 <뉴욕 매거진>에 "청소년용 서적이 강력한 소셜미디어 철회, 트롤링 및 연쇄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생애 첫 소설을 발표한 한 작가는 실제로 자신의 책을 읽은 적도 없는 온라인 패거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도서 출판을 포기했다.
한 유명 방송 작가는 그와 방송업계가 일상적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자신의 창의적 선택이 불문율에 제약을 받는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저 특정 경로를 따라 상상력을 가동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압박감을 느낍니다. 다들 알죠. 소셜 미디어가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로비 소아브는 <공황 발작>에서 (중략) "그들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겁먹게 해서 입을 다물게 만든다."라고 했다. 이런 캠페인의 표적이 되면 사회적 방사능이 될 수 있다. 평판과 직장 또는 사업체뿐만 아니라 다수의 친구와 사회적 인맥도 잃을 수 있다. 그들은 사회적, 직업적으로 취소될 수 있다.
물론 자기 검열은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일부다. 우리는 그것을 '예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이 지적 생활에서 솔직한 대화 및 비판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중략) 조너선 화이트는 말했다.
"2015년에 철회 문화는 한층 더 빠르게 전국에 퍼졌습니다. 학생들은 더 방어적이 되었고, 자신의 생각이 지배적 관점과 다르다는 걸 훨씬 더 두려워하고 있다."
(중략) 홀리라는 사람은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완전히 소모적이죠. 사람들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모두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더럽게도 무서워하니까요." (중략)
중도 좌파 학생들은 중도 우파 학생들만큼이나 포위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졸업생은 인종이나 젠더 또는 성적 취향에 대해 절대 논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내게 말했다. 이상 끝. 왜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불리하기만 하니까요." (중략)
2010년대 중반에 문제의 양상이 바뀌었다. 학계 안팎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가 검열보다 과잉 비판 문제에 더 가까워 보이기에 이른 것이다. 학생들은 표현 강령보다 사회적 압력이, 교수들이 아니라 주로 또래가 주는 압박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중략) "학생들은 누군가 비난할 기회가 생기면 보통 그 기회를 잡더라고요." (중략)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이 과격파한테 산 채로 잡아먹히고 있는 거죠."
(중략) 나이트 재단의 2019년 설문 조사는 "학부생의 3분의 2(68%) 이상은 동급생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캠퍼스 분위기상 자기의 진정한 의견을 표현하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결과는 상당히 전형적이 되었다.
(중략) 불리하기만 하니까.
역설적으로, 취소는 중도 및 좌파 진영에서 반대 의견을 겁박했지만 우파 진영의 트롤러들한테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은 트럼프의 '좋아요' 숫자를 올리는 데 일조했고, 러시아의 악성 댓글마저 새로운 영향력의 정점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중략)
자유롭고 자주적인 사람들이 사는 땅에서 규범 감시 행위가 규범 감시에 역효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감시받는 이들이 공공장소에서는 벙어리가 될지 몰라도 마음속으로 또는 가정에서는 억울함이 쌓여 가고, 그러다 선동가들에 의해 활성화하면 갑자기 폭발한다.
2017년 한 연구가 밝혔듯, "임시방편적인 정치적 올바름이란 규범이 트럼프 지지를 현저히 증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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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사실 누구나 이 부분에 대해 하고픈 말을 조금씩은 느끼고 있을 겁니다. 소셜미디어 피로감의 주 원인이기도 하죠.
누군가에게 모욕적 라벨을 붙여 특정한 형태로 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누군가를 조롱하고 취소 딱지를 붙여 왕따로 만듦으로써,
가령, '기레기' '차별주의자' '마초' '페미' 등등...
또는 '방영 취소' '구독 거부' '배우 등에 대한 공격' '광고 취소 압박' 등등...
또는 정치 권력자들이 특정 좌표를 찍어서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파시스트적 행위 등등....
상대를 침묵하게 만들고, 자기 의견에 강제로 동의하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이 책은 이런 취소 문화가 어떻게 지식의 헌법, 즉 공동체가 기대고 있는 이성적, 합리적 토론의 규범 자체를 파괴하고 허물었는지를 생생히 드러냅니다.
취소 문화는 강압적 동조를 생산하죠. 억눌린 목소리들은 반대쪽에서 결집합니다. 극우들이 이를 악용해 기세를 올리는 것이죠.
우파는 트롤링과 가짜뉴스, 좌파는 취소 문화로 우리가 딛고 선 공론장의 규칙을 파괴합니다.
첫 부분부터 우리 시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끝없이 던져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오늘날 민주당과 정의당이 왜 위기에 처했는가를 알려주는 어떤 지침을 제공할 것 같습니다. 마저 읽고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같이 읽었으면 싶습니다.

 

조너선 라우시, 『지식의 헌법』, 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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