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오길영·권성우,‘황해문화’서 진단
지난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50위 중 26종이 에세이였다. ‘에세이 열풍’이라 할 만하다. 주로 좌절감에 휩싸인 사람들을 겨냥한 ‘힐링 에세이’가 주류이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계간 ‘황해문화’ 봄호는 ‘문화비평-에세이와 지성’ 특집을 기획했다. 출판평론가 장은수 이성과감성 콘텐츠연구소 대표와 문학평론가 오길영 충남대 교수,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가 근래 에세이 열풍을 진단하고, ‘좋은 에세이란 어떤 것일까’에 관한 단상을 밝힌다. 3인 모두 고립 혹은 고독을 견뎌내고 나오는 지성과 사유의 힘을 강조한다.
장 대표는 ‘에세이 열풍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에서 “수많은 책이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외친다”며 현재 한국사회의 증후를 읽어낸다. 대개의 베스트셀러 에세이가 “자본의 폭주가 인간 존엄의 최소한을 위협하는 시대에, 남한테 미움받을지언정 마음을 다치지 않겠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면서 자존감을 지키고 싶다고 부르짖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가짜뉴스’로 무장했지만, 결국 고립된 개별자라는 공허한 라이프스타일의 노예로 전락한다”고 장 대표는 비판한다.
오 교수는 ‘한국 에세이 문학의 슬픈 역설’이란 글에서 한국사회에 좋은 에세이가 드문 이유에 대해 “국가주의적 억압과 통제체제가 오랜 기간 존속해 온 한국사회에서 자아의 내면과 경험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그에 걸맞은 지성과 자신만의 문체를 갖는 에세이는 살아남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사람들은 희망 없는 미래, 상처받은 내면을 달콤하고 따뜻한 에세이나 처세술 책을 통해 위무”하고, “그런 마음을 무시할 수 없지만 한층 다양해지고 지성과 사유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계간 《황해문화》 2019년 봄호
장 대표는 에세이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몽테뉴를 통해 신·구교가 서로 살육을 일삼던 야만의 시대에 “미친 듯 패거리 짓는 한가운데에서 홀로 남아있기라는 고고함”과, ‘나’를 들여다봄으로써 ‘인간다움’을 추구한 에세이의 본령에 대해 말한다.
오 교수는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에세이로 꼽으면서, 한국의 국가주의적 통제체제를 상징했던 ‘감옥’에서 빚어낸 작품이란 점에서 ‘슬픈 역설’이라고 말한다. 오 교수는 “고립된 공간은 그 제한성 때문에 더 깊이 파고들고 숙고하는 공부를 낳는다”면서 “깊은 정신의 힘이 상황에 눌리지 않고 상황을 삶의 교실로 활용하는 드문 예로, 드물기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값지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고립을 견디며 책을 읽다’라는 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재일 디아스포라 작가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을 최근의 힐링 에세이와 “결과 품을 달리하는” 좋은 에세이로 꼽았다. 하루키는 문학상 심사를 모두 거절하는 등 “문학계에서의 고립”을 담대하게 견디며, 또 공공장소나 미디어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오로지 독서에 몰두하며 자신의 글로 승부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권 교수는 “바로 이런 독립적 태도를 오랫동안 견지해왔기에,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그만이 쓸 수 있는 개성적인 글과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묻는다. 서경식 역시 재일교포로서 고립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일가를 이뤘다. 권 교수는 “두 권의 책은 모두 문단이나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감수하면서 수행되는 자유정신”을 통해 “지성과 사유가 지닌 힘이 에세이를 얼마나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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