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의사 문맹(책과 담 쌓은 사람, aliteracy)’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 특이한 나라에 속한다. 문맹률은 0%에 가까운데, 성인 독서율은 고작 59.9%에 불과하다.(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성인 10명 중 4명이 의사 문맹인 것이다.
의사 문맹 상태가 지속되면 문해력에 문제가 생긴다. 짧고 간단한 글은 읽어도 길고 복잡한 글은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되거나, 글자를 읽어도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은 청소년기 문해력은 세계 1~2위를 다투지만 노년기 문해력은 최하위권으로 전락한다. 성인이 되어 독서를 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다.
성인의 독서 이탈률이 높은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청소년기의 독서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학생들은 입시를 위한 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탓에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 비해 독서량이나 독서 시간이 아주 부족하다.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과제나 평가 등의 이유로 억지로 읽는 경우가 많아서 즐겁고 자발적인 독서 경험이 별로 없는 편이다. 독자 정체성 형성에 아주 중요한 시기에 독서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누적되면서, 스스로 책을 읽는 자립적 독자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자마자 책에서 손을 놓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말과 글로 운영되는 정치 체제이므로, 시민의 문해력이 떨어지면 민주주의도 같이 약해진다. 『계몽주의 2.0』(이마)에서 캐나다의 철학자 조지프 히스는 말한다. “언어는 자기 통제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문해력이 높은 사람은 일시적, 충동적 감정을 좇아 행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입장을 잘 받아들인다. 절제와 경청, 설득과 공감은 민주주의의 엔진과 같다. 많은 국가들이 도서관 이용을 활성화해 시민들의 자발적 독서를 지원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독서문화를 활성화하고 성인의 독서 이탈을 막겠다고 나선 성남시(시장 은수미)가 가히 경악할 만한 정책을 내놓았다. 지난달 말에 발표한 ‘첫 출발 책 드림 사업’을 통해, 갓 성인이 된 만 19세 청년이 공공 도서관에서 6권 이상 책을 대출하면 지역상품권을 지원금으로 주겠다고 나섰다. 시민들의 독서를 돈으로 사겠다는 발상으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배금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의도는 좋을지 몰라도 엉뚱하고 한심한 헛발질일 뿐이다.
독서 동기를 연구한 존 거드리 메릴랜드대학 교수 등에 따르면, 포상을 하거나 경품을 주는 것 같은 외적 동기는 독서량을 늘리지 못하고, 독서습관 형성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현금을 준다고 결과가 다를 리 없다. 독서는 돈으로 살 수 없고 사서도 안 된다.
독서 정책의 목표는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책을 찾는 자립적 독자(independent reader)를 기르는 데 있다. 책을 많이 읽고 즐겨 읽고 잘 읽는 ‘좋은 독자’는 도서관의 충분한 장서량, 편리한 접근성 등 튼실한 독서 기반을 구축하고, 독서 공동체 지원, 저자 강연 제공 등 즐거운 독서 경험을 증진하며, 책과 진로 또는 취미를 결합한 체험 프로그램을 풍부하게 운영하는 것과 같은 정책으로 내적 동기를 유발할 때에만 만들어진다.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게 빤한 정책에 예산을 쓰는 것은, 돈으로 선거권을 갓 가진 청년들 환심을 사려는 포퓰리즘일 수밖에 없다. 이 정책은 당장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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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쓰는 《매일경제》 칼럼 ‘책과 미래’입니다. 이번 주는 성남시의 ‘첫 출발 책 드림 사업’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조금 보충해서 올려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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